“박물관은 사람을 기리는 곳이라 생각해요. 여러 전시품은 만든 사람 때문에 박물관에 있을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전시품에는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 있어요. 여기 오신 분들이 전시품을 보면서 창의적인 생각, 어떤 영감 같은 걸 얻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지면적 30만㎡의 방대한 공간에 38만여점의 유물을 보관, 전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새로운 수장을 맡게 된 이영훈(60·사진) 관장은 박물관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소신이 있었다.
지난 3월9일 국립중앙박물관 12대 관장에 오른 이 관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취임 이후 첫 인터뷰에서 앞으로 지방에 있는 박물관이 지역에서 문화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일제강점기에 수탈당한 것으로 알려졌던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모탑 기단부의 사자상이 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지난 60년간 보존돼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불거졌던 상급기관과의 불협화음설을 불식시키고 문화재청·문화체육관광부 등과의 협력을 강화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이 관장은 “우선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를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공개하는 사업을 문화재청과 협력사업으로 진행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담=문성진 문화레저부장 hnsj@sedaily.com
과거에 만든 작품이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창의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확신하는 이 관장은 ‘새로운 과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그런 그답게 민간 자본과 박물관의 협업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개방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 관장은 “필요할 경우 민간 자본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상업적인 자본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적절한 판단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좋은 박물관이 될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물관의 발전 방향에 대한 물음에 이 관장은 “전시품은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 깨달음이랄까 잔잔한 감동을 얻어 갔으면 좋겠다”며 “그런 의미에서 박물관은 사람을 기리는 곳이라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옛사람과 대화하면서 창의적 생각을 얻어 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며 “박물관의 경우 교육·학습의 기능이 강조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학교 밖의 학교가 박물관이다. 자라나는 미래세대를 위해서 박물관의 역할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립 경주박물관장을 포함해 지방에 있는 박물관의 관장을 두루 거친 그는 ‘지방 박물관’ 용어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냈다. “내부에서는 지방 박물관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저는 우선 지방 박물관이라는 표현을 고치고 싶어 소속 박물관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중앙의 반대말은 지방이 아니라 국가인데 지방 박물관이라 표현하다 보니 말에 모순이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바꾸고 있어요.” 이 관장은 그러다 보니 소속감도 더 생기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여·공주·경주·익산 등에 있는 소속 박물관은 고도에 있다. 이런 점에서 소속 박물관은 지역에서 중앙박물관과 같은 구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소속 박물관을 더 챙기고 한정된 자원이지만 공평하게 예산을 배분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특히 예산과 관련해 “중앙도 부족하지만 소속 박물관의 경우 예산 사정이 너무 열악하다”면서 “돈이 없어 전시교육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므로 소속 박물관들이 지역에서 문화 거점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 등 유관기관들과의 불협화음 등 주변의 우려에 대해서는 협업과 소통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유관기관과 불협화음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건 없도록 하겠다”면서 “취임 이후 문화재청장을 만나 앞으로 불협화음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문화재청이 박물관에 비해 상급기관이고 박물관이 문체부 밑에 있는 소속기관이라는 점을 유념해 이들 기관과 대등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고 협력을 이어나가겠다는 것이 그의 복안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 구상도 밝혔다. “지금 구상 중인 사안이지만 지정문화재의 경우 언론에는 자료로 공개되지만 실제 국민들이 이들 문화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문화재청과 협력사업으로 해마다 지정되는 국보·보물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방안을 찾는 중이에요. 아울러 인적교류도 강화해나가겠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외에 소속 박물관도 지역에 있는 연구소와 협력을 강화해나가야 합니다. 경주에는 경주문화재연구소가 있는데 소속 박물관이 지방연구소와 협력하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박물관은 유물의 원형이 유지될 수 있도록 보관하는 것이 핵심 임무이지만 전시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이 관장은 “국립박물관 수장고에서 수많은 소장품을 관리하고 있지만 지금 세대로 끝나는 게 아니라 후대에 고스란히 넘겨줄 책임까지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전시와 활용, 보존은 상충되는 면이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면서 “빛에 민감한 작품들, 예를 들면 채색이 돼 있는 전시품들은 빛을 받으면 탈색이나 변색이 되므로 이런 작품들은 특히 전시와 보존을 적절히 잘하는 방식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컨대 작품들이 1년에 몇 룩스 이상 받으면 휴지기에 들어가도록 하는 노력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에 보존되는 작품들은 3~4세기 중국 그림들의 경우처럼 언젠가는 없어지기 마련이라는 점을 유념해 복제 등의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작품의 피해를 줄이면서 일반인들이 작품을 오래 볼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뼛속까지 ‘박물관맨’이라고 할 수 있는 그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전시는 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 있을 때 반가사유상 2점을 전시한 기억이다. 경복궁에서 한 마지막 전시였다. 그 이후 그는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교토 우즈마사(太秦)에 있는 고류지(廣隆寺) 목조미륵반가상을 같은 공간에 전시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해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전시 성사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고류지 측의 반대로 끝내 이루지는 못했다. 그나마 차선책으로 한일 양국의 고대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우리나라의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의 국보 주구지(中宮寺) 소장 ‘목조반가사유상’을 같은 자리에서 선보이는 전시를 성사시켰다. 오는 5월24일부터 6월12일까지 박물관 내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전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관장은 “고류지 반가상 전시를 수교 60주년에 다시 해보고 싶다”며 짙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리=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1956년 서울 △1975년 경기고 졸업 △1979년 서울대 고고학과 졸업 △1982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고고부 △1993~2000년 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청주박물관장, 부여박물관장, 전주박물관장 △2000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고고부장 △2003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2007년 경주박물관장 △2016년 3월~ 국립중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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