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열린 서울포럼 2016의 ‘상상을 현실로, 현실을 가상으로’ 세션이 끝나기 직전, 청중 가운데 한 스님이 일어나 휴 허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우리가 현실을 착각할 정도로 완벽한 기기(두뇌입출력장치)는 언제쯤 등장할까요?”
인체를 보완하는 의족·재활로봇부터 가상현실(VR)에 이르는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들이 모인 이번 세션은 이처럼 우리의 현실인식을 송두리째 뒤흔들 가상공간에 대한 물음으로 마무리됐다. 연사들은 VR든 의족이든 현실을 가상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그 뿌리가 같다고 봤다. 관건은 발가락 끝부터 두뇌 신경망까지 인체의 신경계를 완벽하게 이해해 진짜 같은 의족, 진짜 같은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번 세션의 마무리 대담을 진행한 한창수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휴 허 교수가 꿈꾸는 생체공학적 의족·의수와 김태용 삼성전자 상무가 소개한 다양한 VR 비즈니스, 박현섭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로봇PD가 제작 중인 재활로봇 모두 인간의 신경계와 연결돼 감각을 자극하는 기술에 근본을 두고 있다고 매듭지었다. 그러면서 인간의 신경과 기계를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접점(인터페이스)이 가장 중요하며 이를 개발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 상무는 이에 동의를 표하며 인간의 신경계와 상호작용하는 수준의 VR기술 발전이 이뤄지면 무궁무진한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드론을 조종하는 사용자가 드론을 타고 직접 날아다니는 경험을 한다든지, 한국에 있는 의사가 영국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수술을 집도하는 일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휴 허 교수는 가장 복잡한 신경망을 갖춘 뇌와 VR기기·의족을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전기 인터페이스의 발달이 필수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전기 인터페이스는 인간의 신경망과 기계가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접점 역할을 한다. 휴 허 교수는 “어떤 종류든 인터페이스는 모두 중요하지만 가상현실에서 촉각을 느끼는 등의 경험은 뇌와 기계를 이어줄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나와야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팔이나 다리를 대신하는 정도의 의족·의수와 달리 영화 매트릭스처럼 완벽한 가상공간을 만들어내는 장치는 아직 멀었다고 연사들은 결론 내렸다. 가상현실의 열쇠라 할 인간의 중추신경계, 특히 뇌의 작동원리는 아직 상당 부분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휴 허 교수는 스님이 던진 질문에 언제라는 말 대신 “뇌를 포함한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가상공간을 만드는 일은 아직 먼 미래”라며 “인간의 신경계가 너무 복잡해 작은 신호라도 자칫하면 인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불안요소”라고 답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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