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인 코스메카코리아는 ‘비비크림’으로 유명한 업체다. 지난 2005년 비비크림 개발에 성공한 후 2007년부터 지금까지 국내외 고객사(브랜드사)에 1억여개를 공급했다. 코스메카코리아가 시장에서 인정받게 된 것은 브랜드사의 요구에만 의존하는 생산 시스템에서 벗어나 선제적으로 연구개발(R&D)에 투자해 기능성 화장품을 잇따라 개발했기 때문이다. 이후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업체들의 기준에 맞게 생산시설을 정비했고 고객사들을 늘리면서 지난해 매출액을 1,000억원 정도로 끌어올렸다. 코스메카코리아는 올해 안에 한국거래소에 상장할 계획도 갖고 있다.
브랜드사의 ‘하청업체’로 인식돼오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와 ODM 업체들이 차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실적을 늘리며 시장에서 ‘소리 없는 강자’로 주목받고 있다. 보통 소비자들은 브랜드사만 아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주요 OEM·ODM 업체들이 브랜드 회사 못지않은 실적을 기록하며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대표적 기업이 한국콜마·코스맥스·코스메카코리아 등 화장품 ODM 업체들이다. 이들은 R&D 에 적극 투자해 다양한 기능성 화장품을 에스티로더·아모레퍼시픽 등 국내외 브랜드사에 공급하면서 최근 3년 동안 매년 20% 넘게 성장해왔다. 한세실업·세아상역 등 의류 OEM·ODM 업체는 글로벌 브랜드로 거래처를 확대하며 일찌감치 매출액 1조원을 돌파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주목받는 OEM·ODM 업체들의 공통점으로 적극적인 R&D 투자를 꼽는다. 한 의류 ODM 업체 관계자는 “OEM·ODM사의 목표는 판매망을 갖춘 브랜드사에 우수한 품질의 완제품을 납품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타사와 차별화되는 기술력과 효율적인 생산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이를 위해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R&D와 인적자원 확보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스맥스는 경기도 판교와 해외 주요 법인에 연구혁신(R&I·Research & Innovation)센터를 두고 정보기술(IT) 융합제품 등을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은 “매년 매출의 5% 이상을 R&D에 투자하며 품질력을 높이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콜마는 창업 초기부터 직원의 30% 이상을 연구원으로 채용하고 있으며 매출의 5% 이상을 신소재·신기술 연구개발에 쓰고 있다. 또 서울 내곡동 일대 부지를 확보해 전국에 흩어져 있던 14개 연구소를 통합한 통합기술원을 설립할 예정이다.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에 등산화와 워킹화를 공급하는 삼덕통상의 경우 국내 직원 350여명 가운데 R&D 인력이 100명을 넘는다. 전체 직원의 26%가 제품개발을 전담하고 있다.
브랜드사 기준에 부합하는 생산·관리시설을 확보한 점도 주목할 만한 요소다. 화장품의 경우 에스티로더·로레알 등 글로벌 고객사들이 생산공정, 유해물질 정화수준 기준을 까다롭게 제시하는데 국내 주요 화장품 OEM,ODM 업체는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생산 시스템을 구축해놓았다. 의류나 신발·가방 OEM·ODM 업체들도 고객사가 요구하는 일정수준의 품질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상품 기획, 제품 개발, 법적 규제 검토, 생산, 품질 관리, 출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글로벌 고객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토털서비스인 OGM(Original Global Standard Manufacture) 시스템을 구축하는 업체도 나오고 있다.
주요 OEM·ODM사는 고객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마케팅 역량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한국콜마는 ‘1사1처방’ ‘고객보호’ ‘기술독립’이라는 마케팅 3원칙을 수립하고 브랜드 기업과의 신뢰를 더욱 두텁게 쌓아가고 있다. ‘1사1처방’은 OEM·ODM 업체가 개발한 다양하고 독특한 처방을 오직 한 기업에 한가지 제품만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고객보호’는 비밀사항과 거래처가 공개를 원하지 않는 사항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기술독립’은 연구개발력이 집약된 노하우와 독립된 기술정보 제공을 통해 고객사의 마케팅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원칙이다. 섬유·의류 ODM 업체인 세아상역 관계자는 “고객사의 요구에 맞게 납기일 준수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직원 교육에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특히 글로벌 브랜드사가 고객인 경우가 많아 외국어 교육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세아상역은 복지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어학 교육비를 지급한다. 코스맥스는 순환근무 원칙에 따라 직원들을 주기적으로 해외법인에 파견해 해외 고객사와 스킨십을 더욱 강화하도록 독려한다.
일부 업체는 OEM·ODM 업체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자체 브랜드를 내놓는 전략을 펼치기도 한다. OEM·ODM 업체는 고객사와 장기간 계약관계를 유지하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거래 관계가 끊기면 새로운 고객사를 확보할 때까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국내 시장이나 일부 해외 시장을 대상으로 자체 브랜드 제품을 출시하기도 한다. 프로바이오틱스 전문기업인 쎌바이오텍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쎌바이오텍은 OEM·ODM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국내에서 미리 선보인 브랜드 ‘듀오락’을 2014년 덴마크 시장에 선보였다. 정명준 쎌바이오텍 대표는 “자체 브랜드 제품을 시장에 알리려면 초기에 비용이 많이 들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OEM·ODM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자체 브랜드 전략이 수익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했다”며 “OEM·ODM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자체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동훈기자 hoon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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