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일선인 지방자치단체 공직사회에 ‘여풍(女風)’이 거세지면서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여성 특유의 감성을 살린 맞춤형 정책들이 속속 등장해 호평을 받는가 하면 위험하거나 힘든 업무가 남성 직원에게 몰리는 경향도 발생하고 있다. 남성 직원 선호현상도 새로운 사회상으로 떠올랐다.
28일 행정자치부가 공개한 ‘지방 여성 공무원 인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지방공무원 29만6,273명 가운데 여성은 9만9,865명으로 33.7%를 차지했다. 지방공무원 3명 중 1명은 여성인 것이다. 지방공무원 중 여성 비중은 지난 1995년 19.6%에서 2000년 22.1%, 2005년 26.5%, 2010년 29.8% 등으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젊은 직원 중 여성의 비중이 높다. 지난해 지방 여성 공무원의 평균 연령은 39.7세로 전체 평균(43.4세)보다 3.7세 낮았다. 여성채용목표제와 양성평등채용목표제 도입, 시간선택제 채용 등으로 새로 공직에 진입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지방공무원 7·9급 공개채용시험의 여성 합격자 비율은 52.2%로 남성보다 높았다. 여성의 공채 합격률은 2005년 처음으로 남성을 앞질렀으며 지난해까지 계속 반수를 넘겼다.
이 같은 변화는 일선 행정현장의 모습도 바꿔놓았다.
개포4동 동장인 우모(56)씨는 최근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개포4동 상가 웹사이트’ 자랑에 여념이 없다. 동내 1,000여개 상점의 목록과 위치는 물론 예약까지 가능하게 만든 이 사이트는 개설 후 10개월간 5만명이 접속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우씨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개포4동 동사무소는 직원 15명 중 10명이 여성인 대표적인 ‘여풍지대’다.
실제로 지자체 현장 실무자들은 동사무소나 시군구청에 찾아오는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민원 업무에서 여성 직원이 남성 직원에 비해 강점을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 한 구청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최모(44)씨는 “민원 업무는 확실히 여성 직원들이 남자 직원들보다 낫다. 불만을 토로하러 온 민원인들에게 인내심을 갖고 친절하게 응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여성 직원이 늘면서 위험한 업무나 힘든 업무가 몰리는 남성 직원들은 고충이 커지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은 매일 오후6시부터 다음날 오전8시까지 해야 하는 숙직을 남성 직원에게만 시키고 있다. 구청에서 근무하는 박모(31)씨는 “새로 들어오는 남성 직원이 줄어들면서 숙직이 돌아오는 주기가 점점 짧아져 부담스럽다”며 “이웃 구청에서는 남성 직원이 부족해 여성 직원까지 숙직에 투입한다는데 우리 구청에서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숙직뿐 아니라 운전이나 순찰, 차에 치인 길거리의 동물 시체를 치우는 일까지 소위 ‘험한 일’들은 남성 직원에게 몰리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는 남성 직원에 대한 ‘품귀’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장기 업무공백을 가져오는 여성 직원들의 육아휴직도 한 원인이다. 서울시내의 한 구청은 전체 직원 300명 가운데 80명의 여성이 육아휴직을 해 업무공백을 호소할 정도다. 서울의 한 동사무소 동장 김모(53)씨는 “육아휴직 등으로 인한 업무공백이 없고 거친 일도 부담 없이 시킬 수 있는 남성 직원을 각 동사무소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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