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를 위해 기업인들과 만나다 보면 예술과 기업 간 거리가 아직은 가깝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반인들이 예술에 거리감을 느끼는 정도와 비슷하다. 예술이 얼마든지 일상화될 수 있는 것처럼 기업 활동에도 녹아들 수 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CI만 해도 디자인의 결과물이 아닌가. 한걸음만 더 나가면 CI는 훌륭한 예술이 될 수 있다.
실제 사례가 있다. 지난 4월 문을 연 한강대로의 LG유플러스 용산 신사옥 앞에는 LG유플러스의 CI를 닮은 조형물이 있다. 이일호 작가의 작품 ‘무제(Untitled)’로 초현실적이고 감각적인 조형 요소들이 담겨 U+모양 그대로가 예술이 되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율동감 있는 이 작품은 우레탄 페인팅 된 레드와 화이트, 스틸과 화강석의 재료들이 비대칭으로 서로 뒤섞여있다. 구부러진 U자 형태의 오른쪽 기둥 한쪽의 가장 높은 곳은 9m60cm까지 치솟아있다. 반대편인 U자의 왼쪽 기둥 중간에는 가운데 구멍이 뚫린 링이 걸쳐져 있다. 손과 손을 맞잡고 두발이 맞닿아 있는 형태로 둥글게 굽어진 종이 사람이 두 명씩 짝을 이루고 있는데, 두 쌍이 비스듬하게 상하 좌우를 가르고 있다. 플러스(+)모양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서로 상생하는 네트워크망이 되자는 플러스의 의미를 아름답게 조형화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에 의해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건축할 때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도록 되어있다. 자연스럽게 건물에 공공미술이 자리하게 된다. 작품의 1차 선택자는 주로 건축주인데, 건축주의 상당수는 기업이다. 작품의 선택은 기업의 이미지나 비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된다. 물론 작품이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고, 또한 주변 입지의 특성에 들어맞느냐도 중요하다.
LG유플러스의 경우 이일호 작가에게 작가의 기존 작품이 아닌 기업의 정체성을 반영한 작업 요청을 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기업의 정체성을 잘 반영했다.
해외의 경우 기업 CI와 예술과의 인연은 뿌리가 깊다. 6대째 가족기업을 고수하고 있는 에르메스는 1945년부터 예술작품을 담은 로고를 사용해왔다. 로고 상단 마부와 마차 이미지가 보이는데 프랑스 화가 알프레드 드 드뢰의 19세기 석판 ‘르 뒤끄 아뗄(Le duc attele)’에서 왔다. 이 작품은 3대 회장인 에밀-모리스 에르메스가 1923년 구입해 현재는 에르메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몽블랑은 2002년부터 ‘몽블랑 커팅 엣지 아트 컬렉션(Montblanc Cutting Edge Art Collection)’ 프로젝트를 벌여 별문양 엠블럼을 현대미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재해석된 몽블랑의 별문양 작품은 지금까지 160점이 만들어져 독일 본사를 포함해 전 세계 몽블랑 사무실과 부티크에 전시돼 있다.
또한 ‘몽블랑 글로벌 아트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몽블랑의 엠블럼과 현대미술작가의 작품으로 페인팅한 3m에 달하는 대형 쇼핑백 모양의 재기발랄한 조각들이 만들어져 파리 샹젤리제 거리, 뉴욕 록펠러센터 광장 등 전 세계를 대표하는 문화와 쇼핑 명소에서 순회전시를 가지기도 했다. 이 작품들은 서울 명동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언젠가 예술로 승화된 우리 기업의 CI도 전 세계 명소를 돌며 세계인들의 눈을 사로잡길 기대해 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