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이 급하다고 서둘렀던 이는 다름 아닌 새누리당과 정부였다.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실업 위기가 발등의 불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야당이 ‘선(先) 추경, 후(後) 청문회’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썩은 동아줄 자르듯 하려 한다. 최경환 등 3인의 청문회 출석 여부가 추경보다 더 중요한 일인가. 야당도 공범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당과의 약속을 깨고 서별관 청문회 증인 채택을 추경의 전제조건으로 하는 것은 정쟁의 도구로 삼겠다는 것 외에 따로 해석할 길이 없다. 더구나 추경은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 먼저 꺼낸 사안이다.
그렇다고 해도 집권당의 설득하려는 노력과 자세가 모자란 점은 아쉽다. 지금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실업으로 경남·울산 지역의 근로자와 가족, 영세사업자 등은 거리로 내몰린 상태다. 이 지역의 실업자 수는 7월 8만7,000명에 달해 지난해 말보다 2만7,000명이나 늘었다. 연내 5만명이 직장을 잃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이들에게 추경을 통한 실업대책 수립은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희망이었다. 여야 정치권이 포기하려는 것은 추경이 아니라 삶에 대한 기대인 셈이다.
새누리당은 추경 처리가 늦어지면 경제적 효과가 사라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절반만 맞는 얘기다. 경기 전체에 대한 기여도는 낮아지겠지만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는 이들에게는 단 하루라도 빨리 지원대책이 나오는 게 절실하다. 이번 추경의 키워드를 ‘생존’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야 정치권이 기어코 추경을 내동댕이친다면 이보다 더 큰 민심의 역풍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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