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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표현주의 화가 최욱경의 강렬한 색채 속으로

국제갤러리 31일부터 개인전

미국 활동시기 70여점 선봬

최욱경 1974년작 ‘불합격품(reject)’ /사진제공=국제갤러리




분홍색 보자기에 싸인 그림이 등장하자 법정은 술렁였다. 화가 최욱경(1940~1985)이 잡작스레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그린 ‘학동마을’이었다. 2011년 4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차장 시절이던 2007년 인사 청탁을 위해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그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됐고 ‘학동마을’은 ‘뇌물’로 검찰에 압수돼 급기야 재판장에까지 나왔다. 당시 시가 4,000만원 안팎의 그림을 두고 변호인 측은 “전문가가 봐야겠지만 정말로 유명한 사람의 그림이 아니라면 그래도 살만한 그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래저래 그림은 수난과 수모를 겪었다.

단색조 회화가 주도하던 1960~70년대 한국 화단에 강렬하고 대담한 추상표현주의 화풍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화가 최욱경은 미술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작가다. 일찍이 1965년 뉴욕 코넬대의 초청으로 개인전을 열었으며 파리비엔날레(1972년), 상파울루비엔날레(1981년) 참여를 비롯한 국립현대미술관(1987년)과 호암갤러리(1989년) 개인전 등 화려한 이력과 주요 소장처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불명예를 씻고 그 작품세계를 제대로 만나볼 수 있는 최욱경의 개인전 ‘최욱경:미국 시기 1960s-1970s’가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 2관에서 오는 31일 개막해 10월 30일까지 열린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예술감독인 김성원 씨가 초빙큐레이터를 맡아 최욱경이 미국에서 활동하던 1963~1978년의 회화 70여 점을 펼쳐 보인다. 2005년 이후 11년 만에 최욱경 개인전을 기획한 국제갤러리는 작가의 시대별 작품을 총정리한 카탈로그 레조네(전작도록)도 출간할 예정이다.

어려서부터 재능을 보인 최욱경은 부모의 적극적 후원으로 10세부터 화가 김기창과 박래현 부부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워 서울예고에 진학했고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직후 미국 유학을 떠나 현지에서 활동하다 15년 만에 돌아왔다. 미국으로 간 최욱경은 60년대 초반 잭슨 폴록,윌렘 데 쿠닝 등의 작품을 접하며 잠재의식을 분출하듯 온몸으로 그리는 ‘액션페인팅’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 만의 표현방식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이후 70년대에는 한국의 단청, 민화 등의 전통적인 색감과 뉴멕시코의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본격적인 색채연구를 진행하면서 그림은 더욱 풍성해졌다.



그러나 국전(國展)을 중심으로 한 보수적 경향이 지배적인 가운데, 차분하고 자기수양적인 태도로 표현을 절제하던 당대 주류 단색조 회화 달리 격렬한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낸 최욱경의 추상표현주의는 비주류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작가마저 45세에 요절했기에 최욱경에 대한 평가는 그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번 전시는 가장 미국적 사조인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으로부터 시작했으나 한국적 구도와 색깔, 재료의 독창성으로 한국적 정체성을 반영한 최욱경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02)735-8449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최욱경 1966년작 ‘성난 여인’ /사진제공=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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