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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만 희귀질환자 두번 울리는 건보

평생 질환인데 비급여·횟수제한 많고

1·2차 치료제 선진국과 거꾸로 적용도

"전문재활치료 포함, 기준 합리화해야"





“다발성경화증 등 희귀질환은 대부분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환입니다. 하지만 1년에 2회 이상 재발하거나 6개월 동안 증상이 악화된 환자 등에게 ‘인터페론’ 주사제를 처방하면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본인부담이 급증합니다. 효과가 강력하지만 부작용 위험이 커 선진국에선 1차 약제가 안 듣는 환자에게 2차 약제로 쓰는 ‘나탈리주맙제제’도 국내에선 1차 약제로 쓸 때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어 사실상 처방이 불가능한 실정입니다.”(김성민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다발성경화증은 뇌·척수·시신경 등에 염증세포가 침투해 감각·인지기능 장애, 하반신·사지 마비, 시력 저하 등 다양한 증상을 초래한다. 국내 유병(有病)인구가 2만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희귀질환 중 하나다. 아직 정확한 발병 원인을 모르고 족집게식 치료제나 치료 방법도 없다.

지나치게 보수적이거나 불합리한 건강보험 급여 기준은 희귀질환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건보 적용이 안 되면 본인부담 진료비·약값 등이 비싸져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비용 마련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급여 지급을 거부하거나 깎는 일이 많아 다발성경화증 환자에 대한 치료제 처방을 중단하는 불상사가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팔다리가 마비되고 평생 뇌졸중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하는 성인 모야모야병 환자도 마찬가지다. 질환 진행 속도가 빨라 적어도 1년에 두 번가량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건보 적용(본인부담률 10%)은 연 1회에 그쳐 초과 횟수당 130만원가량의 검사비를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희귀질환 중 일반 질환보다 낮은 10%의 건보 본인부담률을 적용(산정특례)하도록 명시된 것은 164개다. 지난해 진료를 받은 희귀질환자 33만명의 건보 진료비는 1조1,000억원에 이른다.하지만 진단 방법조차 확립되지 않은 질환이 적지 않고 확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 실제 본인부담 진료비는 훨씬 큰 게 현실이다. 건보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진료비, 국내에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1,000여개 희귀질환 가운데 164개를 제외한 나머지 질환의 환자와 진료 실태 등도 안갯속이다.

건보 진료를 받은 환자가 2만명을 웃도는 희귀질환은 심근병증(2만8,849명), 결합조직의 기타 전신 침습(2만8,183명), 강직성 척추염(2만7,867명), 궤양성 결장염(2만6,391명) 등 4개뿐이다. 10위인 모야모야병 수진자는 9,897명으로 1만명을 밑돈다. 수진자 1인당 평균 건보 진료비는 혈우병이 9,220만원으로 가장 비쌌고 발작성 야간헤모글로빈뇨증(6,135만원), 대사 장애(3,651만원) 순이었다.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불합리한 건보 급여 기준은 부유층만 비급여 진료·검사나 전문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장벽 역할을 하고 있다. 임재영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에게 전문재활치료를 하면 통증을 줄이고 신체기능을 호전시킬 수 있지만 불합리한 급여기준 때문에 환자는 상태가 악화되고, 의료계는 건보가 적용되는 단순물리치료에 치중해 전문재활치료 경험을 축적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해 오는 12월 말 시행되는 희귀질환관리법의 하위법령에 이런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도입하거나 희귀질환 관련 건보 급여 기준을 손질하고 임상시험·경제성평가 요건을 완화·면제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용철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법에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심사 특례조항이 있지만 환자들이 진료비 본인부담 경감 혜택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건보 적용 특례조항은 없다”며 “시행령 등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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