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야권이 경제민주화 관철을 위해 공정거래법 개정안들을 발의하면서 지난 2014년 감사원·조달청·중소기업청 등 일부 기관에 공정위에 대한 고발요청권을 주는 것으로 일단락된 논쟁이 2년 만에 재현되고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 찬성 측은 공정위의 소극적 태도로 전속고발권이 기업 면죄부로 전락한 만큼 공정위만이 아니라 시민단체 등 제3자가 검찰에 직접 고발해 조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불공정 행위에 대한 판단은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기관이 내려야 하고 이를 건너뛰고 곧바로 형사처벌 한다면 경제 전반에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모든 범죄 행위에 대한 수사권은 검찰이 갖고 있고 검사만이 기소할 수 있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을 비롯한 몇몇 법률은 소관부처의 고발이 없으면 수사를 할 수 없도록 이른바 전속고발권을 규정해 기소독점주의를 제한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에 전속고발제도가 도입된 것은 일반인의 고발권 남용으로 기업의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을 막자는 취지이다. 나아가 경제법 위반에 대해 검찰이 수사하기보다 전문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먼저 심사해 행정처분 하게 하되 공정위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검찰에 고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즉 일반 범죄와 달리 경제법 위반 범죄는 시장분석 등 공정위의 전문적 심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들어 전속고발권을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공정위가 법 위반 행위를 파악하고도 고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아 효과적 규제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공정거래법 등을 개정해 전속고발제도를 보완한 이른바 의무고발요청제도를 추가로 도입해 지난 2014년 시행했다. 의무고발요청제도는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는 법 위반 사건에 대해 중소기업청장·조달청장·감사원장이 사회적 파급 효과, 국가 재정에 미친 영향, 중소기업의 피해 정도 등을 고려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검찰총장에게 고발해야 하는 제도다.
하지만 의무고발요청제 도입 후에도 2014년 기준 공정위 처리 사건 4,079건 가운데 단 1.5%인 62건만이 검찰에 고발돼 공정위의 고발권 행사가 여전히 저조할뿐더러 사실상 기업의 면죄부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재벌이나 대기업의 법 위반 행위를 엄단해 경제민주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전속고발권 규정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고 이를 반영한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도 있지만 필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이제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첫째, 공정거래법 시행 36년째인 현재 검찰은 공정거래 사건에 관한 전문성을 충분히 축적한 만큼 공정위의 지식이 검찰 수사에 전제돼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편견일 뿐이다. 공정위는 법 위반 기업에 대해 시정 조치나 과징금 부과만을 담당하고 기업의 범죄에 대한 판단은 전문 수사기관인 검찰이 하는 것이 법체계상 옳다. 범죄 수사 착수 여부에 대한 일차적 판단을 수사 비전문가인 행정기관에 주는 것은 수사체계에 맞지 않다.
둘째,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일반 시민이나 주주·시민단체·경쟁사 등의 고발권 남용으로 고소 고발이 난무해 검찰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는 점은 경제 범죄에 관한 특유한 문제점이 될 수 없다. 경제법 위반을 포함한 모든 범죄에 대해 모든 시민은 권리로 고발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고발로 검찰이 범죄의 단서를 포착할 수 있다면 이는 오히려 합리적인 절차인 것이다.
셋째,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대기업이 처벌되는 경우보다 법률 대비책을 갖지 못한 다수의 중소기업이 처벌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범죄를 저질렀다면 중소기업이라도 당연히 처벌돼야 하며 예외를 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다. 개인이 범죄를 저질러도 중형에 처해질 수 있는데 중소기업이라고 형벌을 면제해줘야 할 이유는 없다.
넷째, 전속고발권제도의 부진한 점을 보완해 의무고발요청제도를 도입했으니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보다 현행 제도하에서 검찰이나 감사원·중기청·조달청 등이 적극적으로 고발권을 행사하도록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전속고발권제도가 효과가 없다면 폐지하면 될 일을 의무고발요청제도라는 예외 조항을 다시 만들어 전속고발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제도 도입 후에도 고발 실적이 여전히 미미함을 경험했으므로 이제 범죄 수사의 원칙으로 돌아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우리 기업들을 어떠한 경우에도 범죄 행위를 하지 않는 건강하고 윤리적인 체질로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현행법상 공정위의 고발이 없으면 경제법 위반 범죄 행위에 대해 검찰은 완전히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전속고발권을 전면 폐지함으로써 검찰의 수사 가능성을 항시 열어둘 필요가 있으며 만일 공정위의 협조가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협조를 받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이렇게 하면 범죄 적발을 염려하는 암수범죄(暗數犯罪·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범죄)가 크게 줄어들 뿐 아니라 검찰의 본격적인 전담부서 운영으로 범죄 단속 활동이 훨씬 강화될 것이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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