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살면서 의료 봉사를 한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금기시하는 이야기인데, 현대적으로 말한다면 징크스인 것으로 생각된다.
원주민들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횡설수설하거나 좋지 않은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아버지가 ‘왼쪽 어깨’라고 말하면, 그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그곳을 얻어맞거나 야자열매가 왼쪽 어깨에 떨어져 죽는다고 믿는다. 또 아버지가 ‘바나나’라고 말했을 경우, 그 아이는 성장하면서 죽을 때까지 바나나를 먹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가 바나나를 먹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첨단과학이 발달한 현대에 이런 말을 들으면 미신으로 치부할 것이다. 그런데 슈바이처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로 그런 미신으로 죽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오늘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이야기 중 이런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운동선수가 어느 게임 회사의 표지를 장식하는 표지모델을 하면 그 선수는 이후 구설에 오르거나 부상을 입던지, 패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여성 복서 론다 라우시가 12승 무패였는데, 2015년 ‘UFC2’ 표지모델을 장식한 후 홀리홈 선수에게 KO패했다는 내용이다. 필자는 앞의 두 이야기를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긍정에 가깝다.
‘정신력의 기적’ 저자인 미국의 단 카스터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무엇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을 때, 이 세상에는 당신이 원하고 있는 것을 충족시켜줄 힘이 있습니다.” 이 우주는 믿는 만큼 우리에게 갚음을 준다. 종교를 떠나서 그 믿음이라는 것과 마음은 묘한 상관관계가 있다.
우리 삶은 우리 자신이 믿는 만큼 이뤄지게 돼 있다. 말 그대로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어느 주파수에 놓느냐에 따라 반응이 온다는 점이다. 그 주파수가 성공이나 행복에 놓여 있다면 행복과 성공이 올 것이요, 불행이나 실패에 주파수가 있다면 부정적인 일들이 발생할 거라고 본다. 곧 믿는 만큼, 그리고 간절한 만큼 이뤄지게 돼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 내용 중에 “믿음만 있으면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무 조각도 성스러운 물건이요, 믿음이 없으면 거룩한 십자가도 문설주나 다름없다”는 말이 있다. 필자는 손목에 108염주를 차고 있다. 나의 습관적 믿음이고 꼭 믿어서가 아니라 부처님 제자로서 살아가는 ‘힘’의 역할을 한다. 아마 종교를 가진 사람이든 아니든 그런 것은 하나쯤 있을 것이다. “생각이 현실이 된다(Thinking comes true).”고 하듯이, 생각이 확신하는 신뢰가 긍정적인 삶을 열어줄 것이다.
다시 글 앞으로 돌아가자. 아프리카 원주민 아버지가 우연히 내뱉은 말이 그 아이의 평생 악운이 된다는 것을 반대로 생각해보자. 아버지의 말이 ‘평생의 행운이 된다’고 믿는다면, 어찌 될까. 적어도 불행한 일이 생겼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이다. 설령 그런 일이 발생해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또 두 번째에 말한 표지 모델을 한 운동선수가 불우한 일을 겪는 것도 이렇게 생각해보라. 표지모델 될 정도의 선수라면 사람들에게 관심을 많이 받는다. 주목받는 선수가 실전에서 부담감으로 작용해 실패한 것은 아닐까.
인간의 불행은 신이 내리지 않는다. 인간 스스로 만든 두려움으로 고통스러워하고 그 고통으로 나락에 떨어진다. 스스로 만든 함정에 빠지지 말라. 자신 스스로의 긍정적인 힘, 믿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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