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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는 만남 A to Z]7년차 영업사원 그는 왜 디제잉에 빠졌을까

오후 7시, 파란 와이셔츠에 단정한 남색 정장, 코가 뾰족한 갈색 구두를 신은 평범한 직장인이 서울 이태원의 어느 캄캄한 공간에 들어선다. 평일 저녁을 가득 메운 직장인들 테이블 사이로 그는 당당히 DJ박스와 화려한 핀 조명이 갖춰진 DJ스테이지로 걸어간다. 검은색 두툼한 베낭과 정장 재킷을 한쪽에 벗어둔 그는 헤드셋을 꺼내 들고 작은 USB를 DJ박스에 꽂는다. 잔잔한 딥하우스 비트에 맞춰 목을 앞뒤로 움직인다. 노래 후반부에 접어들자 다시 헤드셋을 쓴 그는 믹서(Mixer)를 분주하게 올렸다가 내렸다가 혹은 좌우로 돌리더니 이내 전혀 다른 호랑나비 트로트가 딥하우스 비트에 맞춰 믹싱된다. 예상치 못한 두 장르의 만남에 “오~”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서며 맥주잔을 들고 그의 믹스셋 비트에 몸을 맡긴다. 그렇다. 그는 낮엔 방방곡곡 기계를 팔러 다니는 7년 차 영업사원, 퇴근 후에는 화려한 무대를 책임지는 DJ Point01이다.

잘나가던 외국계 회사의 평범한 신입사원에서 돌연 DJ 아카데미 강사로, 그리고 다시 영업 분야에서도 가장 고되다는 물류 회사 기술 영업사원으로 돌아온 그. 이제는 프로 말고, 평생 직장인 아마추어로 불리고 싶다는 ‘퇴근 후 디제잉’ 커뮤니티 운영자. 그는 대체 왜 디제잉에 빠졌을까.





‘퇴근 후 디제잉’ 커뮤니티 운영자 겸 국내 1호 DJ 코디네이터 장규일씨/출처=장규일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흔한 직장인이자 디제잉을 좋아하는 DJ(Disc Jockey) point01 장규일(34)입니다. 현재 ‘퇴근 후 디제잉’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으며,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국내 1호 DJ 코디네이터예요. 주로 직접 DJ파티를 기획하거나 DJ와 관련된 콘텐츠를 개발하면서 대중과 접점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배우는 것을 좋아해요. 대학교 다닐 때 밴드에서 보컬을 했었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는 걸 즐겼죠. 저 혼자 듣는 것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 음악 추천하는 것도 좋아했고요. 그래서 몇몇 지인들은 “DJ 짱” 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제잉을 배우기 시작했죠. 제 직군이 기술 영업직이다 보니 늘 방방곡곡 출장 다니면서 공장마다 기계 점검하는데, 대한민국 영업사원의 삶 정말 힘들잖아요. 디제잉이야 말로 스트레스를 푸는데 제격이다 싶었어요.



2012년부터 디제잉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냥 퇴근하고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의의를 뒀죠. 근데 디제잉을 하면서 저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희열 때문에 점차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고가의 장비 구입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DJ아카데미에서 강사로 근무했죠. 흔히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근데 저는 되레 하나도 즐겁지 않았어요. 자꾸 ‘경제적 수익’을 따지게 되더라고요. 학원 수강생 등록 횟수가 곧 제 실적이니까요. 어느 순간 저 자신이 속물이 된 것 같아 회의감이 많이 들었어요. 결국 그렇게 좋아하던 디제잉도 그만두게 됐죠.



그러던 어느 날 한 직장인 수강생 분이 저에게 안부를 물으며 학원수강 이후 디제잉을 꾸준히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도움을 청하셨어요. 학원에서 근무하면서 쌓게된 별별 정보들이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걸 깨닫고 점차 슬럼프를 극복했죠. 직장인으로서 DJ활동을 했던 것이 많은 직장인들에게 공감을 많이 얻었던거 같아요. 단순히 제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됐죠.



흔히 취미 생활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 사람의 반응은 “와 퇴근하면 피곤한데 그것까지 하시다니 대단하시네요”라는 반응이에요. 저도 평소엔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정말 정신없거든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제 본업이 있고 취미생활로 할 수 있어서 “아 바빠죽겠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취미생활을 하면서 “정말 내가 바빠죽겠지만 정말 살아있구나”를 느낄 때가 많거든요.



신입 땐 정말 “회사는 넘치는 내 열정으로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충성을 다 했어요. 딱 대리까지. 대리가 되고 나니 회사에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모든 업무가 뻔해지고 권태기가 오더라고요. 그때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지만, 제 삶 전체를 생각했을 땐 마이너스의 시기였던 거 같아요. 제2의 인생 원동력이 되어준 것이 바로 DJing이에요. 지금은 직접 내가 음악을 만들면서 무언가 창작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매일 살아있는 느낌이죠.



DJ코디네이터의 역할은 한 마디로 DJ와 관련된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흩어진 정보를 모아 적재적소에 제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정보 수집이 생명이죠. 디제잉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땐 국내서 유명하다는 DJ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제 블로그에 연재하기도 했어요. 물론 학원에서 배울 수 있지만 실제 업으로 삼고 있는 분들에게 듣는 정보들이 좀 더 와 닿을 것 같았거든요. 제가 직접 아카데미 업에 몸담아봤었으니까요.



저희 커뮤니티는 지난 2015년 7월부터 운영하게 됐어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관심이 없는 유령 공간이었죠. 지금은 약 2,000명 정도. 수치로만 보면 아직 적은 수지만, 실제로 활동 회원 수는 60% 정도. 아무래도 회원 한 명 한 명을 다 제대로 확인해서 가입 수락하다 보니 유령회원이 적은 편이죠. 전체 회원 중의 50%가 직장인, 30%가 대학생, 나머지 20%는 10대 혹은 50대 분들이에요. 가장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은 ‘직장인’이고요. 커뮤니티 이름 자체가 ‘퇴근후 디제잉’이라서 그런 걸까요(하하)

오프라인 모임은 정기적으로 한 달에 2번 정도, 최소 10명에서 30명 사이로 모이며, 회비를 받아 자발적으로 진행된다. /출처=퇴근후 디제잉


저희 커뮤니티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지만 단, 한 가지 원칙이 있어요. 모임을 하다 보면 활동하는 사람들만 계속 모여요. 그러다 보면 친한 사람들끼리 따로 모임을 하고 신규 회원들은 계속 못 어울리게 되는 것이 커뮤니티의 폐해죠. 그래서 저는 모임을 기획하면 신규 회원들 위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요. 누구나 처음 오면 어색하니까 낯가리게 되고 배우려고 커뮤니티를 가입했지만 제대로 활동을 못 할 가능성이 크니까요.

일단 디제잉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에 수입이 미미하죠. 근데 본업이 따로 있으니까 취미생활에 투자하는 비용은 또 과감한 편이고요. 제 나름대로 철칙이 있다면 제 월급대비 마이너스 30%까지는 괜찮아요. 제가 커뮤니티 운영자라서 아무래도 파티를 기획할 때 프로 DJ 섭외나 장소 및 관련 장비를 대여해야 하니까 보통 사비를 내서 진행하고 있어요. 운이 좋게 그 파티가 흥하게 되면 본전이죠.(웃음) 참고로 전 금수저 혹은 고위급 자제가 아닙니다. 그냥 연봉 3,000만원대의 평범한 직장인이에요.





지난 3월 페이스북 공식 커뮤니티 ‘퇴근후 디제잉’에서 커뮤니티 최초로 믹스셋 콘테스트가 진행됐다./출처=퇴근후 디제잉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믹스셋(Mix set, 여러가지 종류의 음악을 하나의 곡으로 섞는 것) 콘테스트였어요. 믹스셋이란 한 가지 콘셉트를 정해서 3분 정도의 여러 곡을 짜깁기해 자신만의 개성으로 노래를 재구성한거죠. DJ들은 단순히 만드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고 싶어해요. 믹스셋 과정도 보통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음악)을 마치 글 쓰듯이 쭉 이어붙이면서 창작의 과정이거든요. 운영자로서 회원들을 위해 깜짝 믹스셋 콘테스트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직접 9명의 프로 DJ들을 섭외해 전문가 리뷰를 받을 수 있도록 했죠. 콘테스트 약 3주 전, 깜짝 이벤트를 공고하고 회원들에게 접수받기 시작했어요. 불과 며칠 만에 예상했던 인원보다 거의 4~5배나 많은 신청자가 몰렸어요. 접수가 끝난 뒤 2~3주에 걸쳐서 심사했어요. 단순히 좋고 나쁘다는 평가가 아니라 초 단위로 곡의 흐름에 대해 꼼꼼히 분석하고 제안까지 했죠. 심지어 1등부터 꼴찌까지 순위를 매긴 다음 그 결과를 공개적으로 발표했어요. 회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그 이벤트를 계기로 저희 커뮤니티가 많이 활성화됐던 것 같아요.



요즘 100세 인생이라고 하잖아요. 평생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살기 위해선 ‘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DJ는 아직까지 제 취미 생활이고, 수익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일을 그만두면 곤란하죠. 이미 한 번 겪어 봤으니까요(웃음) 만약 저를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면 그때는 아마 본업이 될 수도 있고요.



디제잉을 하면서 제 인생에 많은 기회가 찾아왔어요. 업무를 통해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게 되고 제 인생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앞으로 미래를 꿈꾸기도 하고. 특히 그간 디제잉을 하면서 쌓아뒀던 지식들을 더 많이 공유하기 위해서 최근 책을 출판했어요. 디제잉을 모르는 초짜들을 위한 지침서랄까. 하나도 안 팔려서 제가 다 사야 되면 어쩌지 했는데, 얼마 전 백화점, 지역 문화센터 등에서 연락이 왔어요.

주부들을 위한 문화 강의 제의였죠. 정말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올해는 제 인생에 있어 가장 도전적인 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열심히 달려야죠.



요즘, 정말 한국에서 직장인의 삶 지옥같죠. 특히 부서 상사는 만날 놀면서 부하 직원들 괴롭히는 낙으로 살 것 같지만 실상은 정말 안 힘든 사람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 한 번쯤 진지하게 찾아볼 시간이 필요해요. 꼭 디제잉이 아니더라도, 디제잉같은 특별한 활동을 해야 취미생활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냥 퇴근길에 항상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서로 공유를 하거나 그런 것도 하나의 취미 생활이 될 수 있어요.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서 공유하거나 올리는 것도. 그냥 평범한 일상에서 소소한 도전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직장인들한테 갑자기 모임을 하나 늘리거나 대회에 참가하는 것 등의 도전은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업계 전문가들은 늘 “직장인들은 돈 주고 배우면서 수업은 너무 대충 듣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직장인들이야말로 본업 시간 이외에 휴식을 포기하고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이거든요. 즉, 콘텐츠 소비자이자 제작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거죠. 고정적인 수입이 있기 때문에 투자할 여력도 충분히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저는 직장인들과 같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하다못해 십시일반 크라우드 펀딩해서 좋은 콘텐츠를 위한 투자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최근에는 그런 점에서 같이 서포트 해주는 프로들도 많아요. 서로서로 윈윈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우선, ‘대한민국의 직장인인데 디제잉을 배우고 싶은 사람, 디제잉을 배운 뒤에도 꾸준히 활동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플랫폼을 확장하고 싶어요. 디제잉에 대한 모든 정보와 콘텐츠들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정보지식창고. 제 최종 목표는 코디네이터를 넘어서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요. 예를 들어 ‘디제잉과 관련된 콘텐츠를 어떻게 요리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볼까’ 이 고민을 해결하는 게 제 목표예요.



지난 9월 ‘퇴근후 파티’ 이벤트에서 디제잉을 하는 장규일씨 모습/출처=장규일


저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걸 즐겨요. 제가 몰랐던 지식정보를 배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공감 가는 글귀들이 많잖아요. 한 마디 한 마디에 쉽게 동요되기도 하고 격하게 공감도 하고 주위에 힘든 사람이 있으면 인용해서 조언해 줄 수도 있어 유익하더라고요. 저는 늘 잘하는 프로보다 즐기는 아마추어로 살고 싶어요. 앞으로 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삶이 더 행복해지는 그 날까지 열심히 즐기려고요!

/정가람기자 gara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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