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 28일 열린 세계경제연구원 주최 국제컨퍼런스의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축사 한글본이 한 달 전인 9월28일 열린 한 언론사 포럼의 축사와 상당 부분 같았다. 세계연 주최 행사는 유 경제부총리의 국회 일정 관계로 최상목 기재부 1차관이 대독했다.
우선 세계연 연설문에서 4차 산업혁명을 설명하며 “신기술이 출현하고 상상이 현실로 바뀌고 있다. 3D 프린터로 인공관절을 만들고 드론으로 상품을 배송하는 세상이 열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언론사 주최 포럼에서도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고 상상이 현실로 바뀌고 있다. 3D 프린터로 인공관절을 만들고 드론으로 상품을 배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기술’이 ‘새로운 기술’로만 바뀌었을 뿐 ‘3D 프린터’ ‘인공관절’ ‘드론’ 등 명사는 물론 어순까지 같았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식을 언급하는 부분도 비슷했다. 세계연 행사에서는 “융복합 신산업 규제에 대해 ‘원칙 개선, 예외 소명’의 네거티브 방식을 적용해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언론사 포럼에서도 “‘원칙 개선, 예외 소명’의 네거티브 방식을 적용해 융복합·신산업에 대한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또 세계연에서는 “규제 프리존을 지정해 융복합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테스트베드를 제공하고 신속한 사업화를 촉진하겠다”고 했는데 언론사 포럼에서도 “규제 프리존을 통해 지역 전략산업에 대한 규제 특례를 부여해 융복합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테스트베드를 제공하고 신속한 사업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어순만 바꿔 말했다.
이외에도 “지능정보, 로봇, 미래형 자동차 등 11대 유망 신산업·신기술 분야에 대한 세제지원을 통해 민간투자를 촉진하겠다”는 부분이 대동소이했고 “9개 분야를 ‘국가 전략 프로젝트’로 선정해 10년간 1조6,0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는 내용도 비슷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 방향으로 단기간에 새로운 내용이 포함될 수 없다”며 “실제 세계연 행사 축사는 영어로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문구 상당수를 그대로 새로운 연설문에 집어넣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순실 게이트로 공직 기강이 해이해지지 않았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보통 장관의 연설문은 담당 부서에서 작성하고 국장 등의 검수를 거쳐 최종본이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연설문 자기 복제’를 걸러내지 못한 것은 기재부 직원들이 최순실 게이트로 업무 의욕을 상실했음을 방증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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