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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돋보기]25년의 미스터리 '미인도'..."진품" "위작" 팽팽

■佛감정팀 사실상 위작 판정...'미인도' 논란 재점화

국립현대미술관 "패턴 분석만으로 결론...침소봉대

미인도 1980년 4월에 소장했는데 81년 작품 베꼈다는 주장도 모순"

유족측 "감정서 미술관에 유출은 국민 기만

해당 미인도 91년 공개 전시 전에 가짜와 바꿔치기 가능성 이미 지적"





25년 이상 해묵은 고(故) 천경자(1924~2015)의 ‘미인도’ 진위 논란이 프랑스 감정팀의 ‘위작’에 가깝다는 결론으로 새 분기점을 맞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숨어있던 인물화를 찾아낸 것으로 해외토픽 등에서 주목받은 ‘뤼미에르 테크놀로지’는 지난 9월 19일 입국해 일주일 가량 특수 카메라로 ‘미인도’를 비롯한 천 화백의 작품들을 분석했다. 이후 프랑스로 돌아가 정밀 감정을 진행한 이들은 지난 1일 “진품일 확률이 0.0002%”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사실상 위작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미인도’는 가짜로 최종결론이 난 것인가? 아직은 아니다. 프랑스 감정팀의 보고서는 검찰이 참고할 다양한 감정 견해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인도’ 진위논란은 현재 3라운드 후반전의 시작쯤으로 봄 직하다.

진위공방 1라운드는 1991년에 터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이 1980년 4월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에게서 압류한 자산 가운데 ‘미인도’라고 임시 작명된 이 그림을 관리·소장하게 된 이후다. 당시 외부 순회전을 통해 대중에 처음 공개된 이 작품을 두고 천경자 화백이 직접 나서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한 것. 그러나 당시 의뢰받은 한국화랑협회 감정단은 안목감정 후 ‘진품’으로 봤고 천 화백은 “제 자식 못 알아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절필을 선언한다.

2라운드는 1999년 당시 그림 위조범으로 붙잡힌 권춘식 씨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내가 그렸다”고 주장하면서 불붙었다. ‘미인도’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비롯해 감정기관의 감정대에 다시 올랐고 ‘진품’으로 마무리됐다.

3라운드는 지난해 8월 천 화백의 타계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재점화 됐다. 천 화백의 차녀이자 ‘미인도’와 유사한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 여성 인물화를 통해 어머니 그림의 모델이기도 했던 김정희 씨는 친자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후 국립현대미술관의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 등 6명을 사자(死者) 명예훼손과 저작권법 위반 등으로 고소했다. 다시금 국과수가 나섰고 그림은 논란 이후 처음으로 미술관 수장고 밖으로 나갔다. 비교용 진품 샘플이 필요해 지난 6월에는 천 화백 1주기 전이 한창인 서울시립미술관의 휴관일을 틈타 전시작 5점이 조사를 받고 오기도 했다.

그림과 흡사하게 화려한 용모의 천경자 화백 /서울경제DB




이번에 ‘위작’ 의견을 제시한 프랑스의 뤼미에르 테크놀로지는 2억4,000만화소의 특수카메라, 다중분광 카메라 등의 장비를 동원해 붓질이 더해진 그림의 층위를 1,500겹 이상 분석하는 과학적 감정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이들의 의견을 다양한 감정 견해 중 하나로 채택한다는 입장이다. 미술계에서는 ‘과학검증’의 신빙성을 높이 보는 쪽이 있는가 하면 유화분석에 더 적합한 감정기법이 전통 채색화가이며 완성 후 애착갖는 작품에 덧칠(加筆)을 종종했던 천 화백의 제작 방식을 놓고 보면 적용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층위분석 보다는 지문분석이나 DNA 분석 방식을 제안하는 전문가도 있다. 게다가 이들 프랑스 감정팀은 ‘위작’을 주장하는 유족 측이 선정하고 감정 비용을 부담했다는 점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고소인측 배금자 변호사는 “프랑스 감정팀의 이후 감정과 분석 등 일련의 과정은 (우리 쪽) 개입없이 검찰과 직접 이뤄졌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5일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인도 논란’에 대해 즉각적으로 “위작이라는 침소봉대 보도는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술관 측은 ‘검찰에서 의문나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물어 온 내용’을 토대로 “(프랑스 감정팀의 결정은) 천경자 작품에 대한 전반적 지식을 배제하고 화면의 표층적 묘사 패턴에 대한 분석 결과만으로 결론을 도출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또한 1980년 4월에 소장된 ‘미인도’가 1981년작 ‘장미와 여인’을 보고 만든 위작이라는 프랑스측의 결론 자체가 ‘성립 불가능한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배 변호사는 “검찰이 감정 결과를 미술관에 유출한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반발하며 “해당 ‘미인도’가 1991년 공개 전시되기 이전에 가짜와 바꿔치기 됐을 경우 80년대에 위조된 그림이 미술관에 소장돼있을 가능성 또한 지적했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지속되고 치열해지자 일각에서는 ‘미인도’가 정권 찬탈을 정당화하려는 신군부의 조작이라는 주장부터 유족 간 헤게모니다툼이라는 증폭된 뒷말까지 돌아 망자(亡者)가 된 거장에 대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제 ‘뜨거운 감자’는 검찰의 손에 놓였다. 다만 기소 결정돼 법원이 이를 판단한다 하더라도 일체의 논란이 종식될 것 같지는 않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법원이 미술품 감정의 직접 주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법원은 지난 2007년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인 45억2,000만원에 낙찰되고도 위작논란에 휘말린 박수근의 ‘빨래터’에 대해 “진품으로 추정된다”는 여지가 있는 판결을 내린 동시에 언론과 평론가 등이 위작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며 사실상 양쪽 모두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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