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주부 한모씨는 급전이 필요해 지인 소개로 저축은행에서 300만원을 빌리기로 했다. 특별한 연체 이력이 없어 10% 중반의 금리를 예상했지만 조회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저신용자에게만 해당하는 줄 알았던 법정 최고금리(27.9%)가 대출요건으로 나온 것이다.
저축은행들의 요지경 금리는 심각한 상황으로 평가된다. 7일 저축은행중앙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 9월 한달 동안 가계신용대출 전체 취급액이 3억원 이상인 전체 37개 저축은행 중 16곳이 1~3등급 고신용자에게 평균 20% 이상의 고금리를 취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1등급에 평균 20%의 고금리를 매기는 저축은행도 두 곳에 달했다. 이는 저축은행들이 자체 신용평가 시스템(CSS)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 한 채 과거 대부업권의 영업형태 그대로 저축은행 대출영업을 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CSS는 개인의 자산과 소득·채무현황 등을 종합 평가해 대출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자동전산 시스템이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 79개 저축은행 중 자체적으로 내부평가 시스템 구축에 나선 곳은 24%인 19개사에 그쳤다. SBI저축은행·OK저축은행·HK저축은행 등 대형 저축은행은 신용평가 시스템 투자와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반면 42개 중소형 저축은행은 저축은행중앙회가 연구 개발한 ‘저축은행 표준신용평가’ 시스템을 사용했다. 나머지 18곳은 CSS를 구축하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CSS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18개 저축은행 가운데 2곳은 월 3억원 이상의 가계신용대출 영업을 하고 있다. 전형적인 ‘주먹구구식’ 영업인 셈이다.
한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CSS를 구축하지 않은 18개 저축은행은 부동산 관련 대출만 취급하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그러나 개인신용대출을 많이 하고 실제로 고신용자에게 고금리를 적용하는 저축은행도 일부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또 이런 저축은행의 경우 체계적인 평가기준 없어 서류심사로 대출을 실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도 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해 올해부터 주요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금리체계 산정이 적절한지 여부를 검사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은 점검 결과 다수 저축은행에 CSS가 갖춰지지 않았다고 판단해 구축을 서두르도록 했다. 하지만 신용등급에 따른 부실채권(NPL) 발생률 등 축적된 데이터가 사실상 전무해 CSS를 구축해도 상당기간 ‘요지경 금리’를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들은 10년 이상 축적된 데이터로 CSS에 의거한 신용등급별 정확한 금리 산정이 가능하지만 저축은행은 현재 관련 데이터가 전혀 없어 CSS를 도입하더라도 이른 시일 내 금리 합리화가 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저축은행의 경우 신용평가 시스템을 통한 합리적 금리산정을 위해서는 데이터 확보와 분류·적용 등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일부 저축은행들은 “2금융권에 손을 내미는 신용등급 1등급 대출자들은 자체 평가에서 1등급이 아닌 7등급 이하로 분류되기 때문에 대출금리 적용이 높다”고 말한다. 신용등급 분류상으로는 고신용자임에도 실제 이들의 부실률이 높다는 이유에서지만 공식 통계는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금융당국과 소비자들이 저축은행 대출금리에 대해 수긍하도록 하려면 업계 스스로 CSS 체계를 구축하고 신용등급별 NPL 발생률을 명확히 분류해 대출체계를 정교화하는 방법이 최선책이라는 지적이다. 저축은행 업계의 한 관계자도 “CSS를 기본 틀로 하고 부실채권 발생률을 낮추면 금리 인하는 가능하다”며 “중소 저축은행은 중앙회가 중심이 돼 시스템 구축과 관련 데이터 확보를 하는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저축은행의 불필요한 비용절감도 적정금리 산정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저축은행들은 그동안 텔레비전 광고 등으로 상당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는가 하면 대출모집 중개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비용 발생이 컸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례로 한 대형 저축은행의 경우 지난 한달 광고비용으로만도 20억원을 지출했다. 저축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객을 늘리기 위해 마케팅 비용으로 자사 개인신용대출 규모의 6% 이상을 지출하는 저축은행도 적지 않다”며 “불필요한 비용이 줄이면 대출금리를 낮출 여력은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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