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탄생은 엄청난 능력을 가진 아기를 낳은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혼자 서지도 먹지도 못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도 공감도 할 수 없는 아기인지라 부모의 역할이 더없이 중요하죠.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구글의 알파고가 인간 바둑 챔피언을 이긴 후로 AI 기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드높아진 동시에 인간의 역할과 인간성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한층 깊어졌다. 인지혁명 시대를 먼저 내다본 노소영(55·사진) 아트센터나비 관장은 14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4층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2년여의 AI 연구 끝에 선보인 전시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AI와 휴머니티’의 기획의도를 이같이 설명했다. 국내 유일의 미디어아트 전문 기관인 아트센터나비는 지난 2000년 설립 후 예술과 기술의 접목을 시도해왔고 로보틱스,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테크놀로지 등의 융복합 전시를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트센터나비의 연구소 ‘나비 EI랩’이 제작한 AI 로봇 팔과 IBM의 AI ‘왓슨’, 구글의 예술창작 AI ‘마젠타’ 등을 활용한 15점의 작품이 선보였다.
노 관장은 전시 표제에 해당하는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대답은 예스, 오히려 더 많이 필요하다”고 단언하며 “똑똑한 아이를 낳았다고 해 그 어린 것이 당장 활약할 수 있는 게 아닌 만큼 끊임없이 좋은 양식(데이터)을 주고 좋은 방향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부모의 윤리교육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AI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학습을 시켜줘야 하는 것”이라고 전제하며 “세상사가 효율성·합리성만이 능사가 아니고 더 높은 가치인 정의·사랑 등의 추상적 개념은 AI에게 가르치는 것이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 관장은 AI를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대체 인간은 무엇인가’ ‘제대로 공감하고 있는가’ 등 인간성 자체에 대한 강력한 질문에 봉착했음을 지적하면서 “옛말인 ‘부모가 되면서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것처럼 우리가 비록 윤리적·인간적으로 살지 못했을지언정 자식에게는 제대로 살라고 가르치듯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더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전시장은 미술관이라기보다 과학관을 방불케 한다. 입구에서 만나는 진 코건의 ‘큐비스트 미러’와 ‘칸딘스키 미러’는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으로 제작된 작품이 관객의 모습을 큐비즘 혹은 칸딘스키풍으로 변형해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교육용 로봇인 ‘로보 판다’는 학습한 동화 내용을 바탕으로 관객의 질문에 슬픔·기쁨·분노 등 다섯 가지 감정을 표출하며 영어로 대답한다. 모리스 베나윤 등 작가 3인의 협업작품인 ‘브레인 팩토리’는 혼돈·사랑·무정부주의 등 추상개념을 제시하고 이에 집중할수록 화면의 푸른 공이 가운데로 이동하는데 과제를 성공하면 뇌파의 결과가 3차원(3D) 프린터의 조형물로 만들어진다.
아직은 예술로 받아들이기에 적잖은 거부감을 주는 작품들이지만 인상주의나 초현실주의도 처음에는 광학과 심리학에 더 가까운 비(非)예술로 여겨졌던 것을 되새긴다면 상당히 볼 만한 전시다. 15일부터 내년 1월20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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