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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플랫폼으로 가상화 비즈니스 지평 넓힌다"

인터뷰 | 모니카 멩기니 다쏘시스템 최고전략책임자

모니카 멩기니 다쏘시스템 부회장은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기획하고 변화를 주도한 인물 중 하나다. 사내에선 ‘엄마(Mom)’로 통한다.




다쏘시스템은 3D 설계와 시뮬레이션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기업이다. 과거 특정 산업에 머물던 이 회사는 이제 3D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며 전방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7년 전만 해도 다쏘시스템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3D 캐드(CAD · Computer Aided Design)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이 회사는 특정 산업에서만 잘 나갔다. 항공우주와 국방, 자동차와 운송 두 분야는 장악했지만 그 밖으로는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다. 엔지니어들이 만든 회사다 보니 마케팅과 세일즈가 약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모니카 멩기니 최고전략책임자(CSO·부회장)가 있었다. 멩기니 부회장은 세계적인 생활용품 회사 P&G에서 오랫동안 마케팅을 담당했던 인물.마케터와 엔지니어가 손잡으며 다쏘시스템은 전혀 다른 회사로 분위기가 변하고 있었다.

우선 결과를 보면, 지난 7년 사이 이 회사의 비즈니스 분야가 2개 산업에서 12개 산업으로 확장됐고, 연매출과 시가총액은 3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연매출은 3조8,000억원. 더욱 주목할 점은 앞으로도 확장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제가 합류할 때만 해도 다쏘시스템은 기술 중심 회사였어요.” 멩기니 부회장은 말한다.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 저 같은 사람은 알아듣기도 힘들었죠. 그래선 엔지니어링 밖 다른 부서나 다른 산업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멩기니 부회장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가치를 원했다. 엔지니어가 아닌 경영자, 고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용어를 필요로 했다. 다른 산업에도 확장할 수 있는 연결점을 마련해야 했다.

멩기니 부회장은 ‘경험’에서 답을 찾았다. “우리는 경험의 시대를 살고 있어요. 모든 산업과 모든 CEO가 경험에 주목하고 있죠. 고객에게 차별화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죠.” 3D와 경험이 결합한다면? 멩기니는 거기서 착안을 했다. 3D는 시각적이고 직관적이다. 경험을 제공하는 최고의 도구가 될 수 있다. “3D는 다쏘시스템이 가진 고유한 유산이에요. 경험은 미래죠. 이 둘을 결합하면 모든 산업에서 3D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다쏘시스템은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Experience Platform)’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다. 초반엔 혼란도 따랐다. ‘포장만 그럴싸하게 바꾸는 게 아닌가’하는 오해도 있었다. 하지만 다쏘시스템은 다양한 기업을 인수하며 변화를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10월 5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6 3D 익스피리언스 포럼’에서 모니카 멩기니 다쏘시스템 부회장이 플랫폼 혁신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플랫폼의 시대
가장 큰 변화는 플랫폼이다. 과거 사업모델이 개별 프로그램을 파는 형태라면, 현재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멩기니 부회장은 자동차 제조과정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예전에는 모든 과정이 파편화해 있었다. 디자이너가 CAD를 써서 설계하면, 엔지니어는 복잡한 변환과정을 거쳐 이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옮겨야 했다. 수정사항이 발생하면 일일이 수작업으로 적용해야 했다.

그러나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 아래에선 모든 작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디자이너가 설계도를 그리면, 엔지니어는 이를 마우스로 끌어와(drag & drop)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다. 심지어 타사 캐드 프로그램도 호환된다. 디자이너들에겐 희소식이다. 이노디자인 김진기 제품디자인 팀장은 말한다. “예전엔 모델링 도구, 수정 도구, 렌더링 도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행해 번갈아 사용해야 했어요. 이제는 하나의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이 손쉬워졌죠. 호환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거나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조원가를 비롯해 댜양한 분석도 용이해졌다. 엔지니어가 시뮬레이션 속에서 부품이나 소재를 바꾸면, 원가표 내에서 재료비가 자동으로 바뀐다. 플랫폼 안에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소비자 반응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실시간으로 취합하고 축적할 수 있다. 멩기니 부회장은 말한다.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은 단순히 제품을 시뮬레이션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즈니스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는 역량까지 제공하고 있어요. 경영자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이 같은 활용사례는 소비재와 패션업계에서 찾을 수 있다.

아이스크림 하겐다즈로 유명한 제너럴 밀스(General Mills)는 지난해 12월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도입, 현재 매장 디스플레이에 적용하고 있다. 소비재 업체는 디스플레이에 민감하다. 경쟁사보다 제품을 한 줄 더 놨을 때 판매점유율이 얼마나 높아지는지, 비용 대비 효용은 어느 정도 되는지를 늘 따진다. 시각적으로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도록 미적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 구조물을 세우고 물건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다.

제너럴 밀스는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도입 한 뒤, 매장배치에 드는 인력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 매장과 선반, 제품을 3D 모델로 렌더링한 뒤, 다양한 배치방법을 시뮬레이션 해 최적의 결과를 찾고 있다. 일단 제품이 가상세계 속에 진열되면, 그에 따른 비용과 매출 기대치 등이 자동으로 산출되어 나온다. 예상 값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도출한다. 과거 판매 데이터나 소비자 소비패턴 연구 등을 기반으로 신뢰할 만한 결과를 산출해낸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첼리오(Celio)는 전세계 60개국에 1,000여 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과거 이들은 새로운 매장을 낼 때마다 본사직원이 직접 파견을 나가 인테리어와 디스플레이를 지휘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매장을 세심하게 관리했다. 하지만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도입한 후로는 본사 직원들의 출장이 줄었다. 현장 상황에 맞게 가상매장을 구현, 본사 직원과 현장 직원이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함께 디스플레이를 조정하고 있다. 제품과 매대 조명, 벽장식 등을 렌더링해 배치하고 동선을 따라가며 실제 쇼핑에 가까운 경험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경험의 시대
발 빠른 기업은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고객 경험에 직접 접목시켰다. 푸조를 생산하는 PSA그룹은 올 2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이색적인 신차발표회를 열었다. 시작부터 파격적이었다. 쇼룸에 차가 없었다. 조명과 함께 차가 솟아나면서 등장하는 이벤트도 없었다. 대신 VR 고글과 조이스틱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신차는 고글 속 가상현실에 숨겨져 있었다.

기자도 직접 고글을 쓰고 시험을 해보았다. 제네바에 직접 가진 못했지만, 서울에서 동일한 체험을 했다. 10월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6 3D 익스피리언스 포럼’에 관련 제품이 전시돼 있었다. 고글을 쓰는 순간, 뉴DS3 운전석이 펼쳐졌다. 고개를 돌려 차량 내부를 둘러볼 수도 있었다. 차창 밖으론 프랑스 콩코드 광장도 비쳐졌다. 조이스틱을 움직여 차량 여러 부위를 클릭, 모양과 색깔을 바꿀 수 있었다. 문을 열고 차량 밖으로 나가 주변을 돌며 차량 외관을 살펴보기도 했다.

한 마디로 고글 속 세상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실제처럼 완벽하진 않았지만 몰입하기엔 충분한 경험이었다. 차 주위를 걷다가 자칫 전시장 구조물에 부딪힐 뻔도 했다. 실제 세계를 잊을 만큼 강렬한 가상세계였다. 영화 아바타 만큼이나 짜릿한 체험이었다.

가상 차량은 시연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영상물이 아니다. 실제 차량과 동일하게 만들어진 가상 제품이다. 디자이너가 그리고 엔지니어가 시뮬레이션 한 제품을 그대로 가져왔다. 실제 물리화학적 법칙이 적용되는 가상현실 속 제품이다. 보는 이에게 생생한 경험이 될 수밖에 없다. “경험의 시대에는 제품 만으로 부족해요. 혁신적 제품만으론 경쟁사와 차별화하기 어렵죠.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멩기니 부회장은 말한다. “3D 분야에선 다쏘시스템 만이,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 만이 이런 서비스를 할 수 있어요.”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은 제품 디자인과 시뮬레이션, 패션 매장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비행기, 선박, 의류 첼리오 매장에 적용한 모습.


3D의 시대
제대로 된 플랫폼을 구현하기까지 다쏘시스템은 수많은 기업을 인수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업, 다쏘시스템에게 체질변화를 가져온 기업은 어떤 곳일까. 멩기니 부회장은 ‘엑셀리드(EXALEAD)’를 꼽았다. 다쏘시스템은 미국 생명과학 기업 엑셀리드를 2014년에 인수했다. 엑셀리드는 제약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분자 수준의 3D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을 가능케 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수요가 많은 분야다. 자동차와 항공기도 새로운 복합소재를 늘 찾고 있고, 소비재도 요즘에는 화학산업 색채를 띠고 있다. 멩기니 부회장은 말한다. “다쏘시스템은 물리와 기계공학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여서 화학과 소재 쪽 지식이 부족했어요. 엑셀리드를 인수한 덕분에 우리는 바이오엔지니어링과 소재, 화학 쪽 역량을 갖출 수 있었죠. 그 결과 12개 산업에 적극적으로 다양한 혜택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당장은 콘텐츠 유통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은 iOS와 아이튠즈로 음원, 미디어, 콘텐츠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우리도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그는 고객과 3D프린팅 업체를 연계해주거나, 시스템 엔지니어링 혹은 시뮬레이션 콘텐츠 등을 사고 팔게 하는 일 등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 콘텐츠에는 베스트 프랙티스, 다시 말해 돈 주고도 못 살 경험이 녹아져 있다고도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났다. 주인공 네오는 무예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 단숨에 고수가 됐다. 현실에서도 그 같은 일이 일어나는 날이 멀지 않았다. 꿈 같은 현실 말이다.


[다양한 분야로 뻗어 가는 다쏘시스템의 가상세계]
다쏘시스템은 가상화 대상을 무한확장하고 있다. 그 중 가장 크고 복잡한 대상은 단연 ‘도시’다. 다쏘시스템은 2015년 6월부터 싱가포르 국립연구재단과 함께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실제 도시 특성을 그대로 재현한 3차원 모델을 구축하고, 여러 가지 변화를 미리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다.

여기에는 다양한 데이터가 총동원되고 있다. 기하학, 지리공간정보, 위상 기하학, 건축물, 기후, 인구 통계, 교통, 통신 등 정부기관이 보유한 정보를 수집해 실제와 다름 없는 가상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가상 도시는 실제 도시를 개발하고 관리하기 위한 플랫폼으로도 활용된다. 새 건축물을 지었을 때 주변 교통량을 예상하거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재난 때 취해야 할 최적의 대응책을 미리 시뮬레이션 할 수도 있다.

모니카 멩기니 다쏘시스템 부회장은 말한다. “도시는 최고 규모의 산업입니다. 설계와 건축 뿐 아니라 환경과 보건 같은 복잡다단한 산업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실제 도시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전하지만, 우리는 버추얼 싱가포르를 통해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3D 경험은 우리 몸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고 있다. 이미 가상 심장을 이용한 수술 시뮬레이션이 상용화에 이르렀고, 여타 인체 부분을 대상으로도 가상화가 진행되고 있다. 다쏘시스템은 2014년부터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손잡고 ‘리빙 하트(Living Heart)’ 프로젝트에 착수한 바 있다. 심장의 형태와 기능을 모방한 3D 가상 심장을 구현, 2015년 6월 상용화에 들어갔다. 의학 연구자들은 가상 심장을 이용해 심장 질환을 시뮬레이션하거나 의료장치를 삽입했을 때 효과 등을 미리 시험해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아산병원이 리빙 하트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 다쏘시스템은 가상 신체 연구가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신약을 개발할 때에도 실제 사람을 피험자로 임상하는 대신 가상 신체를 활용해 실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 항공 벤처기업 엘릭서 에어크래프트(Elixir Aircraft)는 중소기업이 주목할만한 성공사례다. 단 6명이 2인승 항공기를 개발, 12개월 만에 하늘로 띄우는 야심 찬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과 3D프린터를 활용해 제작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었다. 다쏘시스템의 플랫폼에 베스트 프랙티스가 녹아 있어 활용 가치가 높았다. 장점은 다양했다. 우선 동역학이나 유체역학적 반응을 일일이 구축할 필요가 없다. 이미 플랫폼에 녹아 있는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 관계 당국의 규제나 행정적인 제한사항도 플랫폼에 적용돼 있고, 승인을 위한 전자 제출 프로세스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2015년 7월 개발에 들어간 이 항공기는 내년 초 첫 시험비행을 거쳐, 내년 말 상용화될 예정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글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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