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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의 '잘못된 버튼'...해운 구조조정 꼬였다

청와대, 예상 깨고 '법정관리' 한밤 기습결정

"최순실게이트 보며 의문의 상황 퍼즐 맞춰져"

1815A01 한진해운, 구조조정 일지




정부가 주도한 해운산업 구조조정이 갈수록 꼬이고 있다. 지난 8월 말 국내 최대 선사인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보낸 후 6조원 이상을 쏟아부어 하나 남은 국적선사인 현대상선을 글로벌 5위 원양선사로 키우겠다고 했지만 상황은 정부 의도와 반대로 흐르고 있다. 현대상선은 법원이 실시한 입찰에서 한진해운의 롱비치터미널 인수가격으로 단 1달러를 써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해운의 치킨게임을 감안할 때 인수해봐야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정부의 해운 구조조정 계획이 뒤엉키는 것은 출발부터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리고 그 선택은 구조조정을 주도한 금융위원회가 아니라 청와대였다는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진해운 운명의 결정을 하루 앞둔 8월29일 오후. 한진해운이 제출한 자구안으로는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채권단의 입장에도 정부 내부의 기류는 긴박함과 다소 거리가 있었다. 줄곧 “법정관리도 불사하겠다”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압박했지만 이 원칙만 가지고는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운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물류·국가안보까지 따져야 하는 일이었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금융위는 ‘재무적 관점’에서 본 한진해운의 상황을 이날 오후 청와대에 최종 전달했다. 일단은 묵묵부답. 이석수 당시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이 이날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하는 등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내홍이 커지던 상황이었다. 당시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진해운에 대한 판단은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채권단의 조건부 자율협약 종료시한이 9월4일이었던 만큼 추가 협상의 여지도 있었다. 이에 유동성 지원이 있으면 용선료 인하에 최종 사인을 하겠다는 것을 선주들로부터 문서로 받아오라고 한진해운에 요구하기도 했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한진해운과의 줄다리기와는 별개로 구조조정 작업을 하는 기업을 법정관리로 보내려는 공무원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靑 조급한 결정에 정부 스텝 뒤틀려...‘해운 방향타’ 잘못 잡아

“현대상선을 한진해운 이상 육성” 정부입장과 달리

부채비율 간신히 맞춘 현대상선, 외형확대 부담

한진해운 자산 현대상선 인수 계획부터 어긋나

그러나 정부 분위기와 달리 청와대는 그날 밤10시께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보내라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다음날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의 사인이 밤늦게 내려왔다”고 말했다. 결국 30일 채권단은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거부를 결정했고 이튿날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후 한진해운발 물류대란이 현실화하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한진해운과 조양호 회장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박 대통령은 9월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정부가 도와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국내 수출기업들에 큰 손실을 줬다”고 질타했다. 대통령이 직접 특정기업을 언급하며 비판한 일은 전례가 없었던 만큼 재계는 물론 정관계에서도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과거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한 인사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한진해운의 급박한 법정관리 결정은 물론 이미 법정관리로 가버린 기업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며 비판한 것은 이해가 안 됐었다. 이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정확한 사실관계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근 최순실 게이트가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당시 결정에 대한 퍼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에 대한 법정관리 결정이 갑자기 이뤄지다 보니 이후 정부의 스텝도 꼬여버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 전부터 물류대란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그러나 “물류대란은 2주 내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일축했다. 과거 STX팬오션의 법정관리 경험이 근거였다. 벌크선 중심이었던 STX팬오션에 비해 컨테이너선이 많은 한진해운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뒤늦게 관계부처가 모두 뛰어들었지만 배에 실린 컨테이너를 지상으로 내리는 데만 두 달이 걸렸다.

한진해운 사태 두 달 만에 내놓은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도 현실인식이 결여 됐다는 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이 방안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통해 세계 해운강국으로 재도약하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하나 남은 국적선사인 현대상선 키우기다. 선박 신조지원 프로그램의 규모를 확대해 현대상선의 초대형 선박 발주를 지원하고 글로벌해양펀드로 해외 터미널과 영업망도 인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또 한국선박회사를 새로 만들어 현대상선의 재무구조 개선도 꾀하겠다고 했다. 현대상선의 대주주가 KDB산업은행으로 바뀐 만큼 일사불란한 지원을 통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현대상선의 외형과 내실을 모두 키우겠다는 게 정부의 전략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첫 단계부터 어긋났다. 법원은 지난 14일 한진해운의 미주 노선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롱비치터미널 지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삼라마이다스(SM) 그룹을 선정했다. 정부는 한진해운의 자산 중 현대상선이 최우선으로 가져와야 할 자산으로 롱비치터미널을 꼽아왔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의 자산 매각은 철저히 가격에 기반을 두고 이뤄진다”며 “한진해운 자산을 현대상선이 매입한다는 시나리오를 짠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현대상선의 생각 역시 정부와 다르다는 점이다. 현대상선을 한진해운 규모 이상으로 키우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지만 당사자인 현대상선은 외형 확대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한진해운 자산 매각 입찰에서 롱비치터미널의 인수예정가로 단돈 1달러를 써낸 것이 대표적이다. 현대상선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 “솔직히 부담스러운 자산”이라고 전했다.

한진해운은 롱비치터미널 지분을 담보로 금융기관들로부터 3억2,000만달러를 빌려 갚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현대상선이 롱비치터미널을 인수하게 되면 구조조정 작업을 통해 간신히 200% 미만으로 낮춰놓은 부채비율이 올라간다. 롱비치터미널이 부지 사용을 대가로 미국 항만 당국에 납부하는 금액은 매년 8,000만달러 수준이다. 이와 별개로 항만 운영비로 1,000억원가량이 소요된다. 통상 터미널 용량 70~80% 이상의 물동량이 있어야 수지타산이 맞지만 해운업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적자 가능성이 크다.

현대상선이 초대형 선박을 추가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평가가 제기된다. 총 20억달러 규모의 선박펀드로 현대상선이 1만3,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선박을 10척 이상 발주하겠다는 게 정부의 청사진이지만 정작 현대상선은 선복량을 줄여야 하는 처지기 때문이다. 현대상선과 노선 협상을 진행 중인 2M의 머스크와 MSC는 오히려 선복량 축소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교역량이 앞으로 더 축소될 수 있다고 보고 해운동맹 전체의 선대를 줄여 효율성을 꾀하자는 것이다./임세원·조민규·한재영기자 세종=구경우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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