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의 국정농단’ 파문으로 정국은 어지럽고 미술시장은 냉각기로 접어들었다. 관람객으로 북적이던 삼청로 화랑가는 ‘촛불 집회’가 열리는 주말만 뜨거울 뿐이다. 그 와중에 학고재갤러리는 독야청청 컬렉터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중국 6,000년 역사를 관통하는 ‘함영저화:중국고문물특별전’에 출품된 131점의 중국 고미술품이 “대만 고궁박물관의 축소판을 방불케 한다”며 입소문을 탔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미술관 밀집지역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오는 15일부터 개막하는 ‘혜곡 최순우 탄생 100주년 기념전:조선 공예의 아름다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유명한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안목을 궁금해 하는 고미술 애호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얼어붙인 미술시장에서 고미술이 주목받고 있다. 통상적으로 고미술은 시장 탄력성이 적어 경기변동에 요동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력과 안목을 확보하고 있는 고미술 애호가들이 경기에 민감하지 않은 데다, 희소성이 적은 고미술품의 공급량이 많지 않은 까닭이다. 따라서 요즘처럼 회생 국면의 미술시장이 급랭했을 경우 현대미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미술이 부각된다.
양대 경매회사도 이에 고미술을 앞세워 겨울경매를 마련했다. 서울옥션은 오는 14일 종로구 평창동 사옥에서 진행하는 ‘제 142회 미술품 경매’에 총 185점 약 76억 3,000만원 어치를 출품한다. 해외에서 ‘귀환’한 희소성 높은 고미술 출품작이 눈길을 끈다.
조선 영·정조 시대를 풍미한 화가 집안에서 태어나 김홍도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화원으로, 특히 초상화로 탁월했던 화산관 이명기의 6폭 병풍인 ‘행려풍속도’가 추정가 6억~10억원에 이번 경매 최고가로 나왔다. 이명기는 보물 제1487호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서직수 초상’이 대표작인데 얼굴은 이명기가 그리고 몸체는 김홍도가 그린 합작품이다. ‘행려풍속도’는 선비가 여행 중에 만난 풍경을 그린 것으로, 이명기의 작품은 초상화·고사도만 전해지고 있어 그의 풍속도 병풍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이 그림은 1817년에 제작된 것이라 그간 생몰년도가 정확하지 않았던 이명기의 일생을 유추하는 단서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일본 오사카의 소장가가 갖고 있던 그림이 이번 경매를 통해 국내로 환수될 기회”라며 “이명기는 그간 1756년에 태어나 1813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출품작이 제작연대가 밝혀진 그의 마지막 작품이며, 작품의 마지막에 ‘단원의 뜻을 따르다’라고 적어 도화서 화원으로 최고의 자리를 다투던 김홍도에 대한 그리움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번 경매에는 이 외에도 미국 LA에 소장돼 온 작품으로 숙종의 북벌의지를 담은 ‘요계관방지도’(이하 추정가 4~8억원)와 석지 채용신의 ‘면암 최익현 초상’(6,000만~1억원), 일본 동경의 소장자가 간직했던 작자미상의 ‘삼국지연의도’(4~8억원), 오카야마 소장가의 추사 김정희 ‘행서대련’(7,000만~1억5,000만원), 오사카에서 돌아와 국내 최초로 공개된 ‘청자도철문 정형향로’(추정가 미정) 등이 외국에서 돌아와 선보인다. (02)395-0330
하루 앞서 13일 경매하는 케이옥션도 국가지정문화재인 ‘혼천의’, 국내 미술경매에는 처음 선보인 높이 4.7m의 대형 삼층석탑 등을 선보여 분위기를 달구고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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