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부 지역에 빌바오라는 도시가 있다. 빌바오는 원래 중공업 중심도시였으나 제조업 경쟁력이 쇠퇴하면서 하락의 길을 걸었던 도시였다. 경제적으로 크게 번성했던 빌바오는 철강산업의 몰락과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잇단 테러로 1980년대 들어서 몰락하기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중심가에 구겐하임미술관이 건립되면서 도시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고 있다. 당시 빌바오 시정부와 유지들은 빌바오를 몰락으로부터 살릴 수 있는 길은 문화산업이라고 판단했다. 마침 미국의 철강왕 구겐하임이 뉴욕에 미술관을 건립해 성공을 거둔 것을 보고 당시 거금 1억달러를 투자해 구겐하임미술관을 빌바오에 유치했다.
유명한 건축가였던 프랭크 게리의 독특한 설계로 완성된 구겐하임미술관을 보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시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특히 구겐하임미술관 근처에 빌바오 아반도이바라 셰러턴 호텔이 있는데 이 호텔에서 바라보는 구겐하임미술관의 야경은 너무나 멋져서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이 호텔의 설계자는 얼마 전 고인이 된 멕시코 태생의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다. 이 레고레타의 유작이 될 뻔했던 작품이 제주에 건설되던 ‘카사델아구아(Casa del Agua)’다. 안타깝게도 불법 건축물 시비에 휘말려 철거됐다.
도시재생이 문화와 결합해 도시를 발전시키고 부동산의 가치를 올린 사례는 수없이 많다. 북촌이 대표적인 사례다. 북촌도 처음에 갤러리 등이 들어오면서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 것이 출발점이었다. 부동산의 가치는 문화가 결합할 때 단순히 고상해지는 것을 넘어서 상업적으로도 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특히 스토리가 결합될 때는 더욱 빠른 속도로 해당 지역이 발전한다. 유명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가 유명 관광지가 되는 사례는 아주 많다.
이처럼 문화와 부동산은 매우 밀접한 공생관계에 있다. 런던 도심의 무용지물이었던 화력발전소를 최고의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테이트모던갤러리나 함부르크의 부두 개발, 뉴욕의 소호 등 부동산이 스토리텔링과 결합될 때 그 경제적 가치는 상당히 크다. 부동산의 가치는 이용객이 많아질수록 증가하는 것이고 이용객의 증가는 스토리나 문화가 결합될 때 폭발성을 가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문화의 잠재력을 다소 과소평가하는 듯하다. 문화라는 소프트파워는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힘든 한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하지만 제주 사례에서 보듯이 아직 한국에서는 문화의 소중함이나 잠재력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필자는 특히 최근 정치권의 사태가 문화에 대한 시각을 오히려 퇴보시키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문화계가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데 이는 정책을 잘못 추진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이번 사태가 문화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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