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 곡 한 곡 끝나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팝 디바의 명곡을 자신만의 에너지로 재해석한 또 다른 디바의 혼신의 무대에 2시간은 아쉬우리만큼 짧게 느껴졌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안정적인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은 주인공은 19년 차 가수 양파(이은진·사진). 뮤지컬 ‘보디가드’의 주인공 레이첼 마론 역을 맡아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계속 고사하다 결국 ‘제일 센 놈’을 만난 거죠.”
‘훈련소 입소’라고 표현할 만큼 고된 작업이었다. 18세에 고교생 가수로 데뷔한 이래 수차례 제안을 받았지만 용기가 안나 고사해온 뮤지컬이었다. 주저하던 양파를 무대에 불러낸 작품은 ‘보디가드’. 휘트니 휴스턴-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1990년대 흥행 영화를 원작으로 만든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휘트니 휴스턴을 보며 가수의 꿈을 키운 양파에게는 더 없이 매력적인 기회였다. “그녀의 히트곡을 한 무대에서 원 없이 부를 수 있다는 ‘꿈 같은 이야기’에 유혹당한 거죠. 휴스턴은 제 우상이었고 가수가 되기 위해 봤던 오디션 곡 역시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였거든요.” 내년 데뷔 20주년을 앞둔 그에게 ‘보디가드’의 음악은 ‘오직 노래만 좋아했던 소녀 시절의 순수한 모습’을 떠올리게 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가수로서는 중견이지만 뮤지컬에서는 그야말로 신인 중의 신인이었다. 연기도, 춤도 처음이라 나머지 공부는 필수였다. “마치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받는 것 같았다”는 양파는 “춤·연기 선생님이 따라붙어 매일 정기연습 후 밤9~10시까지 남아 따로 공부했다”며 “집에서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보며 대사를 연구하는 내 모습이 웃기면서도 신기했다”고 말했다.
춤 연습은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해 눈물까지 흘렸다. “오죽하면 연습 3주차 때 그만두겠다는 얘기까지 할 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저와 동갑인 앙상블 친구가 옆에서 정말 많이 도와줘서 첫 런스루(장면별로 나눠 진행하던 연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서 하는 것) 날 틀리지 않고 동작을 해냈는데 그제야 자신감이 조금 생기더군요.”
‘레이첼의 향연’이라 할 만큼 노래 대부분이 주인공에 집중된 작품이다 보니 체력 관리도 필수였다. 양파는 체력과 볼륨 있는 춤 동작을 만들기 위해 몸무게도 5kg이나 늘렸다. “아마 제가 뮤지컬 보디가드에서 퇴소할 때 얻어가는 가장 큰 수확은 체력일걸요(웃음). ‘휴스턴이 와도 못 할 뮤지컬’이라는 농담까지 할 정도로 정말 힘든 작품이거든요.”
화려했지만 외로웠던 디바의 이야기는 가수 양파가 그간 수없이 느껴왔을 감정과도 궤를 같이한다. 오스카 시상식 무대에 오른 레이첼이 부르는 ‘원 모먼트 인 타임’(One moment in time)은 자신의 감정이 가장 많이 이입되는 곡이라고. ‘가끔은 아픈 날도 마주하곤 했죠, 나를 봐요 그 모든 걸 이겨낸 나를.’ 나지막이 가사를 읊조리던 양파는 “레이첼의 이야기인데 내 이야기인 것도 같아서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울컥하는 순간이 온다”고 털어놓았다.
힘들지만 새로웠다. 고된 훈련을 지나 무대에 오를수록 ‘특별한 이 경험을 더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뮤지컬을 하며 배우고 얻는 것이 많았어요. 민폐가 되지 않는다면 좋은 작품에 또 참여하고 싶어요. 그 힘으로 가수 활동도 한층 깊어지지 않을까요.” 양파와 정선아·손승연이 레이첼 마론으로 출연하는 뮤지컬 ‘보디가드’는 내년 3월5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사진=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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