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크리스마스 대목이면 코스메틱 브랜드에서는 주력제품에 ‘아트’를 접목시키느라 분주하다. 올해도 백화점 1층의 코스메틱 브랜드들은 화려했다. 코스메틱 브랜드와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생각보다 다채로운 형태로 기획되고 있는데 얻는 수혜가 다양한 반면에 실패하는 사례도 있다.
먼저 유명작가와 협업하고서도 제품에 작가의 작품이 적절하지 않게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또한 스토리텔링이 한 줄을 못 넘는 단순한 꽃그림이나 캐릭터 협업으로 인해 아트의 아우라를 입지 못한 채 단순한 ‘문양’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예술과 아티스트를 진정성 있게 이해하려는 기본자세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패키지’에 아트를 입히는 것이 아닌 ‘브랜드’에 아트를 입히는 작업이 돼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해외 코스메틱 브랜드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은 로레알그룹이 인수했지만 일본에서 설립된 브랜드 ‘슈에무라’는 일본의 세계적 작가인 무라카미 다카시를 앞세웠다. 무라카미 다카시를 가장 잘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꽃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슈에무라 제품 케이스를 발랄하게 뒤덮은 ‘코스믹 블라썸’을 선보였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패션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와 협업으로 루이비통의 아트콜라보레이션 열풍을 이끌어낸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국내외 미술품 옥션에서 그의 작품은 빠지지 않고 위탁과 낙찰이 반복되는 환금성 좋은 인기 현대미술작가로 캔버스 페인팅 작품은 수억, 판화작품은 수백만 원에 거래가 된다.
슈에무라 입장에서는 높은 유명세의 현대미술작가를 섭외했다는 자체만으로도 홍보 이슈를 불러일으키기에 좋고, 까다로운 협업 과정을 거치고 상당한 로열티를 작가에게 지불했을 브랜드의 이미지는 기존 고객에 대한 충성도를 높인다. 또한 새로운 고객층을 유입시킬 수 있어 좋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국내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한정판 아이템을 비교적 쉽게 소비 가능한 몇 만원으로 핸드백 속에 소장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시작된 뉴욕의 코스메틱 브랜드 ‘키엘’ 역시 꾸준히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한 홀리데이 한정판 마케팅을 해왔다. 키엘의 경우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화려한 패키지 디자인이 특징인데, 올해는 뉴욕의 생동감 넘치는 연말연시를 일러스트로 표현한 제레미 빌과 협업한 홀리데이 컬렉션을 내놨다. 아티스트를 모를지라도 일단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화려한 키엘의 패키지는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출시와 더불어 연말 키엘홀리데이파티를 마련한 키엘은 아트 협업 파트너인 제레미 빌을 초청해 라이브 페인팅을 선보이는 이벤트를 벌였다. 대중적 관심을 끌기에 좋은 연예인보다 해외 아티스트를 초청한 프로그램을 선택한 키엘은 브랜드에 자유분방함과 예술적 이미지를 얻었고 내한한 제레미 빌 역시 국내에서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관능적인 색조 코스메틱 브랜드의 대표 주자 ‘나스’는 여체를 강렬하고 파격적으로 표현하는 프랑스의 작고한 사진작가 ‘기부르댕’에 대한 오마주로 2013년 기부르댕 홀리데이 에디션 출시와 광고사진을 통해 섹슈얼한 브랜드 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지기도 했다. 한 해 전인 2012년에 출시한 앤디워홀에디션에서는 아티스트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적극적으로 보여주었다. 패키지에는 물론 제품 자체에 워홀의 초상화와 대표작품을 넣었고 워홀의 상징적인 컬러가 색조 메이크업 제품으로 배합되었으며, 워홀이 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철학적 문구가 거울에 새겨졌다. 박소정 아트에이전시 더 트리니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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