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표현의 자유와 창의성을 지키는 보루가 돼야 할 문체부가 공공지원에서 배제되는 예술인 명단(블랙리스트)으로 문화예술 지원의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 것에 대해 너무나 참담하고 부끄럽다.”
23일 송수근 문화체육부 장관 직무대행 등 실·국장들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을 통해 최순실 국정농단 연루 및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여로 전·현직 장관과 차관이 잇따라 구속된 사태에 대해 사죄했다. “이번 일을 뼈아픈 자성의 계기로 삼아 문화예술 정책과 지원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문화행정의 제반 제도와 운영절차를 과감히 개선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하지만 진상파악과 관련자 처리 등 인사·조직쇄신책에 대해서는 특검의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유보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 내부에서까지 수뇌부의 상황 인식이 안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알맹이 빠진 사죄=문체부는 이를 위해 현장 문화예술인들이 중심이 돼 문화예술계의 자율성 확립방안을 논의하고 실행할 논의 기구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 기구에 ‘문화 옴부즈맨’ 기능을 부여, 부당한 개입과 불공정 사례들을 제보받아 직접 점검·시정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해 문화예술의 표현이나 활동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개입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규정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부당한 축소 또는 폐지 논란이 있는 지원 사업 등은 재검토해 문제가 있는 부분은 바로잡기로 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연루자에 대한 진상파악과 책임자 처리는 이날 언급되지 않았다. 송수근 직무대행은 “현재 특검의 수사가 진행 중이고 아직 사태의 전말이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앞으로 특검수사가 마무리되면 문체부 자체의 처리결과도 내놓고 문체부가 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는 마땅히 감내하겠다”고 말했다.
◇“안이한 수뇌부” 내부 비판= 문체부가 마치 비리집단으로 매도되는 데는 직원들도 불만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문체부에는 현재 차관 2명(장관은 공석) 이전에 모두 9명의 장·차관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4명이 이번 사태로 구속수감됐다. 이들은 모두 문체부 외부 인사들이다. 외풍을 제대로 막지 못해서 조직이 파탄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앞서 송수근 직무대행은 이날 오전 대강당에서 직원 간담회를 열어 부처 내부의 의견을 들었다. 특정 현안에 대해 본부 전직원에게 발언권을 부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수뇌부의 상황인식이 부족하다는 취지의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은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여전히 ‘영혼 없는’ 문체부=문화체육관광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조조정의 단골 부처였다. 역대 정권들은 입맛에 맞게 조직을 떼었다 붙였다. 이를 통해 공보부, 문화공보부, 문화부, 문화체육부, 문화관광부 등 여러 과정을 겪었다. 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로 개편된 것은 2008년으로 이명박 정부 때부터다.
정체성은 취약했고 분위기는 산만했다. 과거 출신이 어디냐에 따라 태도가 달랐다. 그리고 조직은 권력층과 외부 입김에 약체가 됐다. 타 부처 출신이나 교수, 당시 정권과 연관된 문화계 인사들이 장·차관을 꿰찼다. 이런 상황에서 ‘영혼 없는’ 관료들이 부화뇌동하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다. 문화계의 한 인사는 “문화계의 자율성을 지키는 것은 결국 문화예술계의 의견을 존중하고 함께할 때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세종=최수문·박성규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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