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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커가 바꾼 가로수길] 유커 빈자리 메운 싼커…'패션·뷰티 성지'에 부활의 바람

대기업·개인 이색 매장 어우러져

같은 브랜드라도 쇼핑 재미 쏠쏠

LG생활건강 '통합 멀티숍' 추진

토니모리도 플래그십스토어 열어

'싼커' 모시기 경쟁 치열해질 듯

10일 가로수길에 위치한 한 패션잡화 매장이 제품을 둘러보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이지윤기자




“중국인 개별 관광객(散客·싼커)이 가게를 살렸습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游客·유커)의 빈자리를 싼커가 채우며 한동안 조용했던 가로수길이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한 옷가게 매장. 삼삼오오 모여 제품을 둘러보는 중국인들로 점포 내부가 북적였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뚝 떨어진데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낮 시간이었지만 고객 숫자는 적지 않아 보였다. 10년째 가로수길 메인 거리에서 소규모 의류매장을 운영 중인 한 점장은 “가로수길로 대형 브랜드 매장이 몰려들며 임대료는 급격히 오른 반면 국내 소비자와 유커 수는 갈수록 줄어 이전을 고민 중이었다”며 “하지만 지난해부터 싼커가 늘어나며 확실히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브랜드 매장의 상권 잠식으로 국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온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골목상권’의 특징을 간직한 가로수길이 개별 중국인 여행객인 싼커의 필수 방문지로 자리 잡으며 국내 ‘패션뷰티 성지’로서의 위상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주춤했던 가로수길을 살려낸 것은 단연 싼커들이었다. 이들이 대기업 중심의 천편일률적 매장이 대부분인 명동·홍대 상권에 점차 흥미를 잃고 대기업 매장과 각 개인의 독특한 매장이 어우러진 가로수길을 선호하게 되면서 상권 자체를 살리는 구원투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선전에서 온 자모웨이씨는 “지인들의 웨이보와 블로그에서 여행 정보를 얻어 자유 여행 중”이라며 “같은 화장품 브랜드라도 가로수길은 매장이 크고 다양한데다 아기자기한 매장이나 카페, 체험존 등이 갖춰져 있어 제품을 구매하는 재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

싼커들은 대형 브랜드들의 플래그십스토어가 밀집한 메인 거리에서 쇼핑한 뒤 이면 도로인 일명 ‘세로수길’로 이동, 개인 디자이너숍과 소규모 카페, 음식점 등 초기 가로수길의 특징이 그대로 살아있는 이색 매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기존 유커들과 달리 모바일을 활용해 개인 선호도에 따라 쇼핑 정보를 파악하고 있어 ‘골목 안 이색 매장’이 살아있는 가로수길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가로수길은 2000년대 중후반 임대료가 강남 상권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덕분에 개인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의 공방과 작업실들이 들어서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 ‘핫플레이스’가 된 가로수길로 대기업 자본이 흘러들어오면서 상권의 독특한 특성은 점차 사라졌다. 기존 임차인들이 떠난 빈자리를 프랜차이즈 업체와 대형 브랜드가 메우자 얼마 지나지 않아 소비자들도 가로수길을 떠났다.

하지만 이면 도로에 다양한 개인 숍을 보유한 점 등이 주효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쌓인 입소문을 중심으로 홍대·이대 상권과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가로수길이 부활에 성공하자 패션·뷰티 업체들도 발 빠르게 가로수길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금한령 등의 영향으로 전체 중국인 관광객 수는 줄어드는 반면 싼커의 수는 꾸준히 증가, 싼커가 선호하는 가로수길의 가치도 그만큼 커진 것이다. 물론 전체적인 매출 기여도는 단체 관광객이 크지만 이들의 비중이 눈에 띄게 줄고 있어 ‘개성’과 ‘특징’을 업그레이드한 매장으로 싼커 잡기에 나서게 됐다.

K뷰티의 대표주자인 LG생활건강은 지난 1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메인 거리에 위치한 한일빌딩을 200억원대에 사들였다. 지상 4층 규모의 이 건물은 생산·유통 일괄형(SPA) 브랜드 H&M과 스파오, 롯데백화점의 패션 전문점 ‘엘큐브’ 등이 들어선 가로수길 최고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LG생활건강은 후·숨37·더페이스샵·빌리프·VDL 등 가로수길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자체 뷰티 브랜드들을 이 건물에 모아 통합 멀티숍으로 운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생활건강은 가로수길 메인 거리에 개별 브랜드숍 다수를 확보하고 있지만 상권 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핵심부 출점을 결정했다.

토니모리도 이달 가로수길에 플래그십스토어인 ‘토니모리 콘셉트스토어’를 열었다. 이 매장은 토니모리가 브랜드 출범 10년 만에 가로수길 상권에 처음으로 선보인 곳이다. 로고·매장 배치 등 새로운 매장 콘셉트를 적용하는 한편 기존 매장보다 색조 라인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토니모리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가로수길을 찾는 싼커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처음으로 해당 지역에 매장을 내기로 결정했다”며 “중국인 관광객에게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를 높이는 등 홍보 창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랜드도 지난해 미국 SPA 브랜드 포에버21이 영업하던 건물을 매입한 후 중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자체 SPA 브랜드인 슈펜과 스파오를 입점시켰다. 천연화장품 브랜드 아이소이도 지난해 8월 가로수길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선보이고 체험형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브랜드 포화 상태였던 가로수길 상권에 싼커라는 새로운 소비층의 유입되면서 이곳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며 “단체 관광객의 빈자리를 대신할 싼커를 잡기 위한 가로수길 내 업체 간 경쟁은 당분간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

토니모리 가로수길 콘셉트스토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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