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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라희 관장 사퇴] "컬렉션·기획전 중단되나" 미술계 타격 클 듯

남편 와병에 아들 구속…예견된 퇴진

미전실 해체따른 후속조치 해석도

2008년 비자금 파문후 두번째

"미술시장 핵폭탄 맞은 격" 충격





홍진기(1917~1986) 전 법무부 장관의 큰 딸 라희(72·사진)는 공부도 잘 했지만 미술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다. 서울대 응용미술학과(현 도예·공예·디자인학부 전신)에 입학했고, 3학년이던 1965년 국전(國展)인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입선했다. 이를 계기로 매년 국전을 관람하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에게 전시회 안내를 맡은 것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의 결혼으로 이어졌다. 이병철 창업주는 며느리 홍라희의 안목을 믿어 자신이 평생을 두고 수집한 예술품과 함께 1995년 호암미술관 관장직을 맡겼다. 이후 그녀는 2004년 개관한 용산구 한남동 ‘리움’까지 이끌며 부동의 ‘한국 미술계 영향력 1위’ 인물이 됐다.



◇“참담한 심정”…예견된 퇴진=홍라희 관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 관장직을 사퇴’한다는 뜻을 6일 삼성문화재단을 통해 밝혔다. ‘일신상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후임 관장도 정해지지 않았다. 홍 관장은 지난달 17일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주변에 “참담한 심정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구속이 결정적 계기였다고 분석한다. 삼성 관계자는 “남편인 이건희 회장이 3년째 와병 중인데다 아들까지 수감됐는데 그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과거 이건희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으며 홍 관장 역시 집안 내홍을 겪어봤지만 ‘아들의 구속’은 차원이 다른 사건이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 미술계 인사는 “고령인 홍 관장이 아들의 구속에 충격을 받아 건강이 안 좋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홍라희 역할론’에 대한 가능성을 차단했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는데 홍 관장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들이 나왔지만 이를 일축했다는 것. 삼성은 지난달 28일 그룹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계열사 자율경영체제를 선포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비판을 받았던 오너와 미전실을 티끌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홍 관장의 사임은 미전실 해체에 따른 후속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홍 관장은 이 회장의 와병 이후 리움 개관 10주년 행사, 호암상 시상식 외에는 공식행사 참석을 자제해 왔다. 이따금 미술계 원로들과의 소규모 오찬이 갤러리 밀집지역인 종로구 삼청로 등지에서 목격될 뿐이었다.

◇미술계 휘청…복귀는 미지수=홍 관장의 일선 후퇴는 지난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와 관련해 특검 수사를 받은 뒤 두 번째다. 당시 그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행복한 눈물’(구입가 715만9,500달러), 프랭크 스텔라 ‘베들레햄의 병원’(800만 달러) 등 600억원 상당의 미술품을 비자금으로 구입한 것으로 추궁당했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홍 관장은 2008년 4월 삼성일가의 ‘책임론’과 함께 관장직을 사퇴했고 이듬해 리움·플라토(구 로댕갤러리)·호암미술관의 기획전 수는 ‘0’이었다. 전시는 관장이 3년 만에 복귀한 2011년부터 재개됐다. 따라서 향후 삼성미술관이 동생 홍라영 총괄부관장 체제로 운영된다 하더라도 ‘관장 공백’은 미술계에 큰 타격이 될 전망이다.

한 사립미술관 관계자는 “홍 관장의 개인 컬렉션은 물론 국립현대미술관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갖는 리움의 작품 소장과 여러 프로젝트도 중단될테니 미술시장은 핵폭탄을 맞은 격”이라고 말했다. 세계적 미술전문매체 ‘아트넷’이 선정한 세계 200대 컬렉터에 매년 이름을 올리는 홍 관장은 해외 미술계에서 ‘마담 홍(Madame Hong)’으로 유명하다. 세계 정상급 미술관인 영국 테이트갤러리, 미국 모마(MoMA)의 이사도 맡고 있다. 홍 관장은 리움의 기획전과 상설전을 통해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을 비롯해 현대미술의 최신 트렌드를 국내에 소개하고 ‘아트스펙트럼’ 등으로 신진작가를 발굴·육성했으며 2006년 개관한 서울대미술관에 50억원의 발전기금을 쾌척하는 등 미술계에 다양하게 기여했다. ‘홍라희 관장이 눈여겨 본 작품’이라는 것만으로 작품값이 오를 만큼 영향력이 컸지만 이번 사퇴 후 복귀 여부는 불투명하다.

/조상인·신희철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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