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국가와 외교적 갈등을 빚는다고 해서 해당국 국민을 사실상 인질로 억류하는 것은 외교적 전례도 없을뿐더러 국제법상에도 하등 근거가 없다.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핵·미사일 도발을 강행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복형마저 독극물로 암살한 김정은 정권이지만 이 같은 상식 밖의 조치까지 감행한 것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심지어 자국의 식량 문제를 돕기 위해 온 국제기구 직원까지 억류했다니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야만적 행위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북한의 이 같은 비상식적 조치가 전혀 낯설지 않다. 북한은 2009년 ‘북한 체제 비판’ 등을 이유로 내세워 현대아산 근로자 1명을 136일 동안 개성공단에 장기 억류한 사례가 있다. 또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발생한 2013년에도 우리 측 인원이 철수하려 하자 ‘북한 근로자 인건비 미수금’ 등을 핑곗거리로 만들어 개성공단관리위원장 등 7명을 억류했다가 일주일 만에야 돌려보냈다.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초 “하루빨리 피해기업의 보상이 이뤄져야 하며 개성공단은 재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단 폐쇄 1주년에 즈음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그는 더 나아가 개성공단을 “(정권교체 후) 2단계 250만평을 넘어 3단계 2,000만평”까지 확장하겠다고도 했다. 이번처럼 나라 간 약속도 손바닥 뒤집듯 하는 북한 정권에 대한 너무 순진한 접근 아닌가. 우리 국민의 생명을 김정은의 변덕에 맡기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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