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대선을 불과 11일 앞두고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의 ‘e메일 스캔들’ 재수사를 선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를 이끈 숨은 공신으로 평가받은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트럼프 정권을 정조준하는 비수로 돌변했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의 러시아 내통 의혹이 대형 게이트로 번질 수 있는 상황에서 결정적 발언을 쏟아낸 그는 트럼프 정부 출범 2개월 만에 또다시 미 정국을 뒤흔드는 핵심인물로 부상했다.
20일(현지시간) 코미 국장은 미 하원 정보위원회에서 열린 ‘러시아 커넥션 의혹 규명 청문회’에 출석해 러시아 내통 의혹을 정식으로 수사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러시아가 미 대선 개입을 시도했다는 점도 사실상 확인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클린턴 전 장관을 너무 증오한 나머지 자신이 너무 미워한 사람에게 맞서 출마한 사람에 대한 분명한 선호를 가졌다”고 설명했다.
코미 국장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선일 직전 ‘트럼프타워’ 도청을 지시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서도 “뒷받침하는 정보를 찾지 못했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증언으로 오바마 전 대통령의 도청 의혹을 앞세워 러시아 게이트 무마를 시도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는 물거품이 됐다. 하원 정보위는 이날 코미 국장의 증언을 인용해 트럼프타워 도청이 없었다는 최종결론을 내렸다.
전통적으로 조사 중인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FBI에서 수장이 트럼프 행정부에 불리한 증언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대선 직전 클린턴 전 장관의 발목을 잡으면서 민주당의 해임 요구에도 현 정권에서 자리를 지킨 코미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는 증언을 한 의중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폴리티코 등 미 언론들은 이날 증언의 배경이 명확하지 않지만 정보기관의 독립성을 중시하는 코미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정보기관에 남아 있는 ‘오바마 사람들’로부터 민감한 정보유출이 이뤄진 정황이 있다며 법무부에 수사를 지시하는 등 취임 후 FBI 등과 각을 세워왔다.
코미 국장에게 정치적 일격을 맞은 백악관은 이날 션 스파이서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며 청문회의 파장을 축소하는 데 힘을 쏟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트위터에서 “의회·FBI 등이 기밀유출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며 “유출자도 당장 색출해야 한다”고 물타기를 시도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도 당장 FBI 수장을 교체하기는 어려워 당분간 코미 국장의 입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023년 임기가 끝나는 코미 국장은 앞서 자진사퇴 의사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일조한 그를 백악관과 공화당이 편파적이라고 몰아세워 낙마시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의회전문지 더힐은 “스파이서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FBI 국장에게 완벽한 신뢰를 갖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며 “(현 상황에서) 있을 수 없는 이 지지 발언은 백악관이 난제에 직면했음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