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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성장엔진 위한 소프트인프라] "휴머니티가 4차 산업혁명 핵심가치"...과기-인문학 결합은 필수

2부. 변혁·융합의 시대...기초과학을 키워라

<4·끝> 세상에 없던 '융합'을 만들자

AI·IoT 등 기술만으로 새시대 이끌기 부족

문사철 통해 사람 언어·행동방식·사고 파악

'로봇윤리' 등 소프트 인프라에도 중요 역할

대학학과 축소 자제...인문학 교육 강화해야





지난 2011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 극장의 애플 ‘아이패드2’ 발표현장.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나섰다. “애플의 DNA는 기술만으로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기술은 인문학과 결합해야 하며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휴머니티를 반영해야 합니다.”

잡스의 말은 애플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정보기술(IT) 제품뿐 아니라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을 꿰뚫는 핵심 가치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인간을 알아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한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언어학과 철학·심리학 같은 인문학의 중요성이 더 높아진다고 입을 모은다. 알고리즘과 딥러닝·빅데이터 등 기술 측면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문사철’로 대변되는 인문학이 바탕에 깔리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에서도 선진국에 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많다. 수백년간 인문학 지식을 쌓아온 미국이나 유럽과 근본 경쟁력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전직 경제부처 출신 고위관계자는 27일 “AI 시대가 열릴수록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해진다”며 “사람이 어떤 것을 원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인문학이 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의 생각도 비슷하다. 지난해 ‘서울포럼 2016’ 개막식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에게 영상질문을 던졌던 그는 “과거 인간의 경제활동으로 얻은 주된 생산품은 총과 쇠·섬유·음식이었지만 21세기 인간 경제의 주요 생산품은 몸과 뇌·마음일 것”이라며 “몸과 뇌를 다룰 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는 19세기 영국과 인도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라리 교수의 진단은 1차적으로는 바이오(몸)와 AI(뇌) 기술의 중요성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마음’은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고려대는 지난해 ‘언어·뇌·컴퓨터(LB&C)’라는 융합전공을 새로 만들었다. 국문학과와 영문학과·심리학과·컴퓨터학과가 함께 언어지능을 공부하는 것이다. 인문학과 학생의 경우 자신의 전공을 기본으로 하면서 뇌과학도 배운다. 언어지능은 AI의 주요 요소다. 사람의 말을 기계나 컴퓨터가 정확히 알아듣거나 의사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언어학이 기본이다. 당장 스마트폰이나 자동차의 음성인식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필요하다. 국제통역번역협회(IITA)가 2월에 실시한 인간 대 기계의 번역대결에서 인간 번역사 4명은 30점 만점에 모두 25점을 내외를 받았지만 AI는 10점 이하였다. 맥락을 파악하지 않고 단순 번역을 하거나 90% 이상의 문장이 어법에 맞지 않고 한글 문장이 장황했다. AI 연구에는 국문학과 교수도 필요한 것이다.



1차적으로는 언어에 한정되지만 사람의 행동방식과 습관을 알아야 제대로 된 AI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제 산업계의 상식이다. 말의 맥락이나 행동의 전후관계, 이용자의 기분을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공존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더 그렇다. AI로 운행되는 자율주행자동차는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주행을 하지만 인간이 모는 자동차는 과속과 신호위반을 비롯해 자신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비합리적 행동도 한다.

문학과 예술, 사람의 감정 같은 고차원적인 부분은 문학과 역사학·철학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 AI와 로봇의 윤리, 법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인문학과 사회학을 기반으로 한 새 시대의 법과 제도를 다룰 ‘소프트 인프라(Soft Infra)’ 구축이 절실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 창의적인 사고와 업무가 가능해진다”며 “앞으로의 융합은 집과 자동차를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상황에 따라서는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도 하는 인간의 요구를 얼마나 잘 구현해내느냐가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현실은 반대다. 올 들어서도 경기대가 국어국문과와 문예창작과를 통폐합해 한국어문학 트랙으로 바꾸고 사학과는 역사콘텐츠학 트랙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지난해 교육부가 주관하는 대학정원 조정사업인 ‘산업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프라임·PRIME)’ 사업으로 21개 대학의 인문사회 분야 정원이 내년부터 2,626명 줄어든다. 축소 목표치(5,351명)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다. 반면 공학 분야는 4,856명 늘어나 전체 증가분의 90.7%를 차지한다. 향후 공학계열에서만 21만5,000명의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지만 ‘인문학 학생 수 감소→학과 축소 및 지원 감소→인문학 위축’이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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