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실제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여기에 일자리사업과 사회간접자본(SOC)·연구개발(R&D) 등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대형사업들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대선주자들의 주장처럼 파격적으로 재정절감을 하려면 일자리 등 주요 사업까지 줄여야 하는데 이럴 경우 일자리 창출은 고사하고 경제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이전 정권 때마다 재정개혁을 명분으로 불필요한 사업을 이미 대폭 줄인 상태여서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여지가 작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 “공약에 필요한 재원을 증세 없이 마련하겠다”며 재정절감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지난해까지 유사·중복사업 689개를 통폐합했다. 당초 목표 600개를 초과 달성한 것이다. 나랏돈 누수가 많다고 지적된 보조금 사업을 10% 줄이고 갖가지 아이디어로 마른 수건 짜듯 재정지출을 줄이기도 했다. 이렇게 탈탈 털었는데도 박근혜 정부 4년간 확보한 재원은 약 36조원, 연평균 9조원에 그쳤다. 재정절감으로 연평균 16조3,000억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애초의 장담이 무색할 정도다.
사정이 이런데도 문재인 후보 등 대선주자들은 유사·중복사업 통폐합 등으로 연평균 10조~18조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잖아도 빠듯한 나라살림을 더 쥐어짜겠다는 것이다. 재정형편을 모르는 ‘이상론’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 상태로는 누가 당선되든 담배가격 인상 등 ‘꼼수 증세’에 매달린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라도 근거 없는 낙관론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재원마련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 출발점은 공약 구조조정이다. 무분별한 포퓰리즘 공약은 유권자들의 이해를 구해 빨리 폐기하는 게 마땅하다. 증세가 필요하다면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