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우리나라 구도심의 로드 상권 개념이 무너진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역세권이나 재래시장을 축으로 해서 의류·패션과 이면 먹자골목으로 구성된 천편일률적인 상권의 모습들이 점차 신도시나 대형 상업 시설들의 등장으로 대변화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월세가 오르다 보니 수십 년간 정착한 전통적 업종 군이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내주면서 프랜차이즈 상권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유명 의류 브랜드 중심에서 차츰 기타 패션업종이나 식음료, 소매 계열의 매장이 뒤섞이는 형국이다.
업종 군이 바뀌고 월세 수준이 크게 오르는 과도기에 수도권에는 수많은 상권이 탄생하며 기존 상권들을 위협했다. 지하철역과 신도시가 만나는 소위 요충지에는 광역 상권이 개발되어 지하철·백화점·쇼핑몰·주상복합·배후 아파트 등이 결합한 매머드급 상권들도 탄생했다. 1960년대 이후 형성된 구상권들은 안팎의 악재에 악전고투 중이다. 권리금이 떨어진다고 해서 꼭 상권이 몰락 혹은 쇠락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임차인은 거대 자본을 앞세운 대형 프랜차이즈밖에 없으므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는 양상이다. 구도심 상권 중에도 더러 대반전의 틀을 만들었는데, 소위 ‘OO거리’라고 해서 카페 혹은 잡화, 퓨전음식점 등으로 이뤄진 거리이다. 하지만 잦은 임차인 교체나 급격한 프랜차이즈화 같은 문제들이 있고 이는 불안정한 임차 시장을 만들기도 한다.
수도권 상권 지형은 매우 복잡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의 강자인 구도심 상권들과 신흥 거리 상권들, 곳곳의 초대형 상업시설들, 신도시 상권들은 얽힐 대로 얽혀 있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예측하기 매우 힘들다. 원래 창업 시장은 유행에 민감하고 온갖 경쟁이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것 같다. 현재 천호역, 신림역, 노원역, 연신내역 등 엄청난 전성기를 누렸던 서울 구도심 상권들은 바로 이 과정에서 진통을 겪으면서 정체된 느낌이고 신흥 상권의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가로수길, 연남동, 합정동, 경리단길, 서촌 등 단시간에 대단한 주목을 받은 신흥 거리 상권들 역시 기초체력이 약해서 불안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많은 대학가 상권들도 높은 임대료 탓에 몰락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면서 순항하던 곳들도 최근 주춤하다. 민자역사 개발, 뉴타운 조성, 초고층 빌딩 건립 등 호재가 만발하던 2000년대 중반과 비교하면 너무 조용하다. 마지막 노른자위라 불리는 용산, 한전부지 신사옥 건립으로 시끄러웠던 삼성역 일대가 개발되려면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대전환을 앞둔 듯 서울 시내 상권들은 잔뜩 움츠려 있다.
수도권은 동탄역세권, 고덕국제화지구 등 중대형 광역 상권들이 상권 지도에 이름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 조성되는 대형 신도시에 포함되는 탓에 판교역(분당)이나 부천 중동·상동(부천역), 안양 평촌·범계(안양역)처럼 기존 상권에 위협을 줄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신도시 개발이 축소되면서 경쟁 상권이 가세가 점차 줄어들면 신도시의 기존 상권들은 일단 큰 변수가 없는 이상 순항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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