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한 중학교의 무기계약직 영양사인 김모(48)씨는 오전8시20분에 출근해 아이들 급식을 준비한다. 그날의 식재료가 오면 상한 것은 없는지, 수량은 맞는지 확인한 뒤 조리원 8명과 함께 900인분의 음식을 만든다. 오후1시30분 급식이 끝나면 산더미처럼 쌓인 식판 900개와 음식 조리기구를 설거지한 뒤 오후4시30분께 퇴근한다. 올해 7년차인 김씨의 연봉은 2,600만원가량. 김씨가 국가공무원인 영양교사 신분이라면 얼마를 받을까. 공무원보수규정에 따르면 김씨의 연봉은 4,750만여원으로 껑충 뛴다.
동일 노동을 하는 무기계약직 영양사와 영양교사의 임금 차이는 신분 차이에서 비롯된다. 영양사는 출발선에서부터 차별을 받는다. 1년차 임금을 보면 영양사는 2,580만원, 영양교사는 3,570만원가량이다. 이후 근속연수가 더해지면서 영양교사는 호봉승급에 따라 봉급이 올라가는 반면 영양사는 연차와 관계없이 임금이 거의 동일하고 약간의 근속수당만 더해진다.
이렇다 보니 영양교사 1년차와 10년차의 연봉 차이는 1,200만원에 이르는 반면 영양사 1년차와 10년차의 연봉 격차는 200만원에 그친다. 연차가 쌓일수록 영양교사와 영양사의 연봉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15년차가 되면 영양사와 영양교사의 연봉 격차는 2배 가까이 벌어진다.
김씨는 “영양사로 7년을 근무했지만 수입은 그대로”라며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지만 다른 학교에서 같은 일을 하는 영양교사를 보면 상실감과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영양교사를 뽑을지, 영양사를 채용할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 어떤 학교는 영양교사가, 어떤 학교는 영양사가 아이들 급식을 책임진다. 다만 대부분의 학교는 영양교사보다 영양사를 선호한다. 각 시도교육청과 학교별로 공무원 수가 제한돼 있어서다.
서울시내 한 중학교의 최모 교사는 “국공립학교에 영양교사가 한 명 들어오면 그만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과교사 자리가 줄어든다”면서 “학교 입장에서는 교사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영양사를 채용하는 대신 교과교사를 더 늘리는 게 최적의 선택”이라고 전했다. 정부의 일괄적인 교육공무원 정원 제한이 김씨와 같은 무기계약직 증가를 야기한 셈이다. 최 교사는 “학교의 필수 업무를 계약직으로 채용하도록 방치한 점에서 정부의 행태는 악덕 기업주나 다를 바가 없다”고 꼬집었다.
교육부가 학교회계직원이라는 명칭으로 분류하는 계약직은 전국 초·중·고에 14만명가량 근무하고 있다. 이 가운데 12만명이 무기계약직이다. 직종도 다양하다. 급식실 영양사·조리사, 교무실 행정직원, 상담사, 사서 등 50개를 웃돈다. 방과 후 강사, 기간제교사, 파견용역까지 포함하면 국가공무원이 아닌 계약직 직원은 38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보수뿐 아니라 복지나 휴가 등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방종옥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국장은 “학교 계약직 직원과 시험을 통과한 교육공무원을 똑같이 대우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서 “다만 계약직 직원들이 자괴감을 느끼지 않도록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게 우리의 요구”라고 말했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학교회계직원’이란
교육부는 영양사, 조리사, 상담사, 행정직원 등 임용 시험 없이 각 학교가 채용한 계약직 직원들을 통칭해서 ‘학교회계직원’이라고 부른다. 얼핏 1970~1980년대의 ‘경리’를 연상시키는 이 명칭은 계약직 직원의 보수가 각 학교의 자체 회계(운영비)에서 지급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시도교육청에 지급된 정부 예산(교부금)에서 보수가 지급되는 교육공무원(국가직)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어’인 셈이다. 보수가 지급되는 재원의 이름을 따서 하나의 신분이 만들어진 특이한 사례다. 서울시교육청 등 전국 14개 시도교육청은 지난 2014 조례를 제정해 이들을 ‘교육공무직’으로 분류하고 있다. ‘학교회계직원’이라는 명칭에 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법률에 이들을 통칭하는 직책이 없다”며 학교회계직원이라는 명칭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학교회계직원이라는 명칭만 봐도 임용을 보지 않은 학교직원들을 대하는 교육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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