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벤처기업 인프라웨어는 지난 20년 동안 오로지 모바일 한 우물 만을 파왔다. 그 결과 인프라웨어가 개발한 모바일 오피스 프로그램 ‘폴라리스 오피스’가 국내외 시장에서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글로벌기업 도약을 노리고 있는 인프라웨어의 이해석(38) 대표를 만나 국내외 모바일 오피스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실 취재를 시작하면서 조금은 망설였다. 지금까지 ‘벤처인 Talk! Talk!’ 코너는 대개 창업 1~3년 차 신생 스타트업들을 다뤄왔다. 그러나 인프라웨어는 벤처치곤 역사가 길고 규모도 너무 컸다. 물론 이 회사도 처음에는 스타트업이었다. 1차 벤처 붐이 일어났던 1990년대 말 창업해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온 1세대 벤처기업이다. 수많은 1세대 기업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생존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현재의 인프라웨어를 스타트업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건 다소 어색한 측면이 있다. 모바일 오피스 플랫폼 하나만으로 연 매출 500억 원대를 기록했던 이 회사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매출이 더 많이 발생할 정도로 높은 글로벌 인지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인프라웨어는 정체성과 기업문화 측면에서 지금도 여전히 창업 당시 초심을 유지하고 있다. 이해석 인프라웨어 대표도 이러한 마음가짐을 직원들에게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이런 분위는 요즘 이 회사가 처한 상황과도 연관이 있다. 최근 인프라웨어는 실적 하락의 늪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장과 성공의 역사는 잠시 잊고,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도약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이해석 인프라웨어 대표는 말한다. “어려운 상황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직원들 사이에서 ‘다시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는 건 긍정적인 부분이죠. 서비스 품질이나 기술력 측면에선 자신이 있기 때문에,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부딪혀보려고 합니다. 저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회사가 재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인프라웨어는 1997년 창업한 소프트웨어 전문 스타트업이다. 인프라웨어의 첫 사업모델은 인터넷 웹 사이트 화면을 프린터 용지에 딱 맞게 출력할 수 있게 하는 솔루션의 개발과 유통이었다. 그 후 인프라웨어는 2001년 모바일 브라우저 ‘폴라리스 브라우저’를 개발해 모바일 플랫폼 회사로 변신에 성공했다. 2003년부턴 국내 주요 이동통신사에 피쳐폰 모바일 브라우저를 공급해 국내 무선인터넷 시장을 대표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인프라웨어의 핵심 사업모델은 모바일 오피스 프로그램 ‘폴라리스 오피스’다. 모바일에서 다양한 형식의 문서를 읽고 편집할 수 있는 폴라리스 오피스 프로그램은 현재 전세계 9억 대 스마트폰에 탑재돼있다.
이해석 대표는 인프라웨어가 모바일 시장에 막 진입했던 지난 2001년 무렵 회사에 입사했다. 개발 직군에 합류한 이 대표는 인프라웨어가 모바일 플랫폼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상품기획부터 영업, 전략기획, 재무까지 회사 경영의 전 과정을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워나갔다. 당시의 경험은 CEO로서 경영 전반을 관리하는데 지금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대표는 말한다. “대표직에 올랐을 때 저는 엄청난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나름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으니까요. 각 부서의 역할과 애로 사항 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면 잘 조율해 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어요. 담당 파트가 각각의 입장에서 모든 현상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하나로 묶는 게 꽤 어렵더군요. 대표직에 오른 후부터 지금까지 약 8개월 동안, 각 부서 담당자들과 ‘회사를 더 넓게 바라보는 방법’을 공유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결국 회사와 구성원, 저의 목표는 모두 하나니까요. 함께 고민하고 협동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게 우리 모두의 목표 아니겠어요.”
무엇보다 이해석 대표를 힘들게 했던 건 회사의 상황이었다. 2014년 무렵 인프라웨어는 최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주력 사업인 모바일 오피스 매출이 반 토막 났고, 새로 투자한 사업에서도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다. 조직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종의 패배주의가 팽배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였다. 이 같은 분위기를 추스르는 것이 이 대표가 풀어야 할 당면과제였다.
그러나 해결책은 결국 실적 회복에서 찾아야 했다. 당장의 실적 개선은 어렵더라도 개선될 여지를 만들어 미래 성장 동력을 찾아야 했다. 비슷한 경험을 해본 대부분의 CEO들은 아마도 새로운 영역에서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석 대표는 조금 달랐다. 인프라웨어가 가장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오피스 프로그램 시장에서 활로를 찾고자 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위기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폴라리스 오피스의 판매 채널이 다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해석 대표는 말한다. “솔직히 사업 초기 폴라리스 오피스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스마트폰 제조사 덕분이었습니다. LG전자의 ‘옵티머스2’와 삼성전자 ‘갤럭시S2’ 모델부터 양사가 출시하는 모든 스마트폰에 선탑재 됐었으니까요. 매출의 70~80%가 거기서 발생했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없으면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였던 거죠.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선 이런 수익 모델이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애플리케이션 시장이 급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죠. 무료 모바일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의 등장과 사전 탑재 앱에 대한 반감이 고스란히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회사 내부에선 어느 정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어요. 스마트폰 제조사에 종속된 수익 모델만으론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내부적으론 예견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꽤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습니다.”
반등 전략의 핵심은 역시 폴라리스 오피스였다. 폴라리스 오피스는 경쟁 플랫폼보다 월등한 기술력으로 지금도 업계 1위 자리를 공고히 유지하고 있다. 이는 수치가 증명해준다. 현재 폴라리스 오피스 가입자는 전 세계적으로 약 6,000만 명이다. 지금도 매일 5만 명의 신규 가입자가 유입되고 있다. 하루에 50만 개 이상의 문서가 폴라리스 오피스로 작성된다. 클라우드 서비스에 저장된 폴라리스 기반 문서는 약 10억 개. 용량으로 치면 1,000테라바이트(TB)에 육박한다.
이해석 대표는 폴라리스 오피스가 기술력에서 경쟁 플랫폼을 압도한다고 자부하고 있다. 차별화를 이끄는 핵심 기술은 인프라웨어가 자체 개발한 ‘유니버셜 엔진’. 필자는 이 대표에게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오피스 프로그램의 생명은 호환성입니다. 쉽게 말해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처음 작성한 대로 문서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요즘에는 클라우드 서비스가 뜨면서 기기 간 호환성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경쟁사들은 이러한 기본을 구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대부분의 경쟁사들은 보통 PC 버전을 먼저 개발한 다음 별도의 가벼운 모바일 버전을 선보이는 전략을 취했거든요. 하지만 폴라리스 오피스는 PC와 모바일 버전 모두 ‘유니버셜 엔진’이라는 동일한 엔진으로 개발했습니다. 인프라웨어는 이 기술력을 기반으로 모바일 오피스 시장에서 혁신을 주도할 수 있었죠.”
기존 서비스를 기반으로 개척할 수 있는 판로는 쉽게 예상을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새로운 판매처를 구하거나 미지의 해외시장으로 나가는 것이다. 인프라웨어도 그 길을 따라갔다. 이 대표는 그 중에서도 특히 해외시장에 주목했다. 스마트워크가 일찍 뿌리내린 선진국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물론 시작은 쉽지 않았다. 일단 해외에서의 인지도가 제로에 가까웠다. 해외 기업 관계자들과 개인 고객들에게 인프라웨어와 폴라리스 오피스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게다가 인프라웨어는 이동통신사와 스마트폰 제조사의 요구에 맞춘 제품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데에만 주력해오고 있었다. 당연히 제품을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비즈니스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장 진입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무렵, 인프라웨어와 이해석 대표에게 한 줄기 서광이 비쳐졌다. 폴라리스 오피스의 기술력을 알아본 몇몇 글로벌 기업에서 역제안이 들어온 것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 대표는 이렇게 회상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갖고 있어도 인지도와 유통망 없이는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절망할 무렵 미국 IBM, 프랑스 오렌지, 미국 시트릭스 같은 해외 주요 클라우드 업체와 보안 업체에서 먼저 연락을 취해왔어요. 당시 이 업체들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모바일로 확장하는 시도를 하고 있었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가 담긴 문서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문제에 직면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오피스 소프트웨어 기술을 발견했던 거예요. 그 후 폴라리스 오피스의 기술력을 눈여겨 본 이들 회사 관계자들과 연락을 주고 받았고, 결국 프로그램 납품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인지도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비즈니스도 시작할 수 있었고요.”
이해석 대표는 향후 1~2년이 인프라웨어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막 시작한 글로벌 사업의 성장과 함께 폴라리스 오피스를 스마트 워킹 시대에 최적화된 문서 플랫폼으로 진화시켜야 하는 과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오랫동안 굳어진 오피스 프로그램 시장의 독과점 해소와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폴라리스 오피스가 대안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해석 대표는 말한다. “단기적인 과제는 폴라리스 오피스의 PC 버전을 기존 플랫폼의 유력한 대안으로 자리잡게 하는 것입니다. 국내외 오피스 시장이 10년 이상 독과점 피해를 입어왔으니까요. 업체들은 매년 ‘기능 보완 없는’ 버전 업만으로 가격을 올리고 있습니다. 별다른 대안이 없는 고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이미 기술력은 인정받은 만큼, 독과점이 해소되고 건전한 시장 경쟁만 이뤄진다면, 인프라웨어가 빠른 시일 내에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오피스 시장에서 인프라웨어와 폴라리스 오피스가 보여줄 즐거운 반란을 기대해주세요.”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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