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히 확대되는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자동차 배터리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 배터리의 품질이나 가격에서 밀리는 것보다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 정부의 보복성 조치라는 의견이 강하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공업정보화부(공신부)가 최근 발표한 ‘신에너지 자동차 추천 목록’에는 58개 기업의 201개 전기차 모델이 새로 추가됐지만 국내 기업이 생산한 배터리 탑재 차종은 포함되지 않았다. 올 들어 중국 정부가 6차례 해당 목록을 발표했지만 번번이 국내 기업이 생산한 배터리 탑재 차종은 제외됐다.
국내 전기차배터리 업계에서도 이에 대해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다. 차량을 제외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품이나 성능이 미달하는지 설명이 없으며 중국 정부에서도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부품이나 품질 기준이 잘못된 것인지도 설명이 없다”며 “다만 국내 기업이 생산한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짐작만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후폭풍’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드가 아니면 한국 제품만 제외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과 외교적 갈등이 첨예한 일본 기업이 만든 배터리는 보조금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일본 AESC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버스 4개 차종은 지난달 초 발표한 보조금 지급 리스트에 포함됐고 이번에도 제외되지 않았다.
한국 기업의 배터리가 중국 정부에 차별을 받기 시작한 시점이 사드 배치 결정 이후라는 점도 업계의 추측을 뒷받침한다. 삼성SDI(006400)와 LG화학(051910)이 중국 정부가 제시한 배터리 모범 규준 인증에서 탈락한 시점이 지난해 6월로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협의를 시작한 이후였다. 7월 사드 배치가 공식 발표된 이후 중국 정부는 ‘자동차 전원 배터리 업계 규범 조건’의 부합 기준을 리튬이온 전원 배터리 최소 설비 규모에 대해 현행 0.2기가와트시(GWh)에서 8GWh로 40배나 끌어올리면서 국내 배터리기업 모두가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
반면 중국 정부의 전기차 관련 산업 구조조정 과정 중 하나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 기업이 직접적인 타깃이 아니라 우후죽순 생겨난 중국 내 전기차 관련 기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에 불똥이 튀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을 줄여나가는 대신 의무생산제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전기차 정책을 바꾸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은 2020년까지 완전히 폐지하고 중국 내 자동차 회사들이 의무적으로 생산해야 할 신에너지차 비중을 2020년까지 12% 이상으로 높이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배터리 업계의 구조조정도 함께 진행해 5차 전기차 배터리 모범규준 인증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드 배치 결정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만 중국 내 전기차 배터리산업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라며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를 빌미로 한국 기업을 배제한 채 자국 업체들의 경쟁력을 키울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가 더 짙다”고 설명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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