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실한 바이오 생태계가 조성돼 글로벌 제약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정부 주도의 ‘메가펀드’ 조성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바이오 기업이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넘어 제품 상용화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선 정부 주도의 초대형 ‘메가펀드’를 조성해야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초기 대규모 투자를 적극 단행한 데 힘입어 제조업 강국으로 올라선 것처럼 초대형 펀드를 만들어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자는 것이다.
22일 국회바이오경제포럼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글로벌 제약 강국 진입을 위한 민간투자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민간 투자를 유인하는 마중물 성격으로 정부의 초대형 투자인 ‘메가펀드’를 하루 빨리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MIT) 금융공학연구소가 암 치료제 개발을 위해 5조원 이상의 메가펀드를 구성하면서 국내에서도 바이오 산업의 퀀텀 점프를 위해서는 메가펀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2016년 10월 11일자 1·3면 참조
전문가들은 바이오 산업의 리스크가 큰 반면 외부 투자가 적은 상황에서 유일한 돌파구는 정부와 연기금이 손실을 먼저 보장해주는 초대형 펀드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와 연기금이 먼저 펀드를 조성해야 민간에서도 이를 믿고 투자에 나서 최소 1조원 이상의 메가펀드가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묵현상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장은 “정부 및 공공기금이 글로벌 펀드를 조성하고 우선 손실 보장, 연구개발(R&D) 매칭 투자 등 민간 투자 유인책을 마련하도록 법적 근거를 도입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먼저 투자 확대 및 투자 유치를 명시해 놓은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통상 바이오 제약 업계에서 연구개발(R&D) 비용의 70% 정도가 비임상·임상 단계에서 쓰이지만 임상 1상의 성공률은 최대 20%에 불과해 ‘죽음의 계곡’이라 불린다. 메가펀드는 자금을 다수의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 나눠 투자해 낮은 성공률을 극복하고 개별 제약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핵심이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정부와 민간의 투자가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프로젝트에만 집중했다고 꼬집는다.
한성호 샤인바이오 대표는 “신약 항체 플랫폼의 후보 물질을 찾는 데 5~6년이 걸리지만 벤처캐피탈(VC)에서는 당장 3년 내 투자 성과가 나오는 프로젝트를 찾는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중장기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해주는 방안이 없어 개별 기업이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경 오송 첨단의료복합단지 이사장도 “정부 당국은 기술의 논문 게재, 특허 획득, 시제품 생산 등을 고려해 (단기간 성과가 나오는 곳에) 주로 직접 투자를 진행했다”며 “정부의 투자 성과를 평가할 때 정부의 평가 지표가 민간 투자를 유도한 실질적인 효과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신약 개발에 대한 투자 활성화를 요구하는 것은 바이오 기업이 고위험 고수익의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통상 임상 3상 단계까지 3,000억원 가량이 소요될 뿐더러 이마저도 신약 후보 물질 10개 중 1개가 품목 승인을 따낼 정도로 실패율이 높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기업의 명운을 걸고 신약 개발에 나서는 것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 업계에 대한 이해 없이 투자가 이뤄지다 보니 정부가 감사를 피하기 위해 (연구 성과에 상관없이) 투자 기업이 ‘성공’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며 “정부가 눈 앞에 보이는 성과에 매달릴 게 아니라 벤처캐피탈과 함께 펀드 조성 방식으로 종잣돈을 불려 투자를 진행하는 게 바이오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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