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슈퍼예산안을 살펴봐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기업실적 개선을 근거로 내년에 국세 수입을 10.7%나 늘려 잡았지만 정작 성장의 토양으로 삼아야 할 산업·기술투자 지원은 줄어들거나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기껏해야 연구개발(R&D) 예산이 0.9% 늘어나고 핵심 국정과제라는 4차 산업혁명 분야도 1,000억원 증가에 그쳤을 뿐이다. 산업부는 중장기 산업정책을 정비해 연말 이후 주요 화두로 제시할 것이라고 하지만 당장 벼랑 끝에 몰린 산업계 입장에서는 한가한 소리로 들리게 마련이다. 이런데도 정부는 통신요금 인하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만 매달려 산업 경쟁력 회복이나 성장동력 확보 같은 다급한 현안을 뒷전으로 미루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새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착한 성장 등 화려한 수사로 포장된 성장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뚜렷한 산업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장도, 복지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일본이나 중국 등 각국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며 수십 조원의 예산을 쏟아붓고 범부처 지원단을 가동하는 것도 이런 현실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혁신 성장을 이루자면 “돈보다는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부가 예측 가능한 메시지를 보내면 기업 투자와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돈도 안 쓰면서 시장에 자꾸 엉뚱한 신호만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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