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그 건물의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지난 2010년 무렵. 두산그룹 기자실이 있는 두타 14층에서 내려다본 DDP의 모습은 이상스러웠다. 어쩌면 흉물스럽게 보였다는 것이 더 솔직한 느낌이었는지 모른다. 우주를 떠돌던 외계 우주선이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동대문 야구장과 축구장을 무너뜨리고 내려앉은 것처럼 보여 때로는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이후 만난 국내 건축가 중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던 이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동대문시장 주변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말살시킨 건축”이라며 “그 건물이 들어선 땅과 그 건물을 바라봐야 하는 서울시민이 억울하다”고 까지 했다.
그랬던 DDP가 2014년 봄 개장 후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우선 기묘하게 생긴 건물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서울시 랜드마크가 됐고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세계의 가볼 만한 명소 52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찾는 이가 많아지자 주변 상권도 덩달아 살아났다. 지난해 하반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역풍이 불기 시작할 무렵에도 동대문 상인의 매출 체감도는 110~120%에 달했다. 같은 조사에서 명동의 매출 체감도는 70~80% 수준이었다.
이쯤 되면 DDP의 디자인 때문에 국내 건축가들에게 호된 질책을 받은, 이제는 고인이 된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생전에 꽤나 억울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라크 출신으로 주로 영국에서 활동한 그는 기존 건축의 틀을 깨며 ‘세상에 없던’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해체주의 건축가로 불린 이유다. 그의 작업 자체가 땅이 갖는 역사성과는 작별일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을 해본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비난과 찬사를 오롯이 받으며 DDP는 우리나라 부동산 개발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 돼버렸다. 2008년 ‘디자인 서울’이라는 계획 속에 동대문운동장 일대를 정비해 태어난 사연 때문이다. 이 땅에서 ‘개발’은 현재의 모습을 깨끗이 갈아엎은 곳에 일찍이 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을 이식하는 과정이다. 숲을 이룬 아파트가 바로 그 개발의 결과물 중 하나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개발 대신 ‘재생’으로 마을 모습을 바꾸고 주거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한다. 땅의 역사를 기억하고 지역 정체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삶의 질을 높여주겠다는 얘기다. 사업 대상이 될 전국 500개 지역의 선정 과정에 잡음이 없을지, 여기에 투입될 50조원이 제대로 쓰일 것인지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지만 우선은 정부의 의지를 믿어본다.
문제는 이 개발과 재생 사이의 너무 큰 간극에 있다. 집이나 땅을 개선하는 방식일 뿐인 개발과 재생이 국내에서는 진영 논리처럼 쓰인다. 개발을 주장하는 이들은 재생의 편에 선 사람들을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가득 찬 인사’들로 규정한다. 재생을 옹호하는 이들은 개발 우선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한판 크게 벌여 떼돈을 벌어보려는 투기꾼’으로 바라본다. 각 진영 사이에 공조와 타협보다는 조롱과 야유만이 오고 간다.
이것만이 옳은 방식이라며 등을 돌리기 전에 저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는 없을까. 그렇게 개발의 부작용을 인정하고 재생의 한계를 확인할 때 보다 생산적인 방법이 떠오를 수 있는 것 아닐까.
새 정부는 8·2대책으로 수요 억제에는 성공한 듯 보이지만 여전히 풍선효과의 징후는 뚜렷하고 집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미련도 아직 버리지 못했다. 재생만으로 필요한 주택 공급이 힘들고 결국 집값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주장도 곱씹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재생으로 도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중앙정부의 첫 시도를 비웃기보다 관심과 조언을 보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그리고 DDP에서 세계 최대의 건축 행사인 UIA 2017 서울세계건축대회가 열렸다. 이번 대회에 124개국 건축인들이 모여 ‘도시의 혼’을 주제로 도시화 속에서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그들에게 혼이 살아 있는 도시는 개발과 재생, 아니면 그것을 넘어선 제3의 다른 방식, 무엇으로 가능한 것인지 묻고 싶다. /ju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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