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게 일본에 밀반출됐던 ‘이선제 묘지’가 한국으로 돌아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다. 묘지(墓誌)는 죽은 사람의 행적 등을 적어 무덤에 묻은 돌이나 도판)을 말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일 도도로키 구니에 여사와 ‘이선제 묘지 기증식’을 진행했다. 이어 20일부터 오는 10월31일까지 상설전시관 1층 조선실에서 환수받은 ‘이선제 묘지’를 전시한다. ‘이선제 묘지’는 1454년에 상감기법으로 만들어진 분청사기로 병조참의, 예문관제학에 오른 이선제(1390~1453)의 삶을 적은 248자가 새겨져 있다. 이선제는 ‘고려사’의 내용을 수정하고 태종실록을 편찬하는 데에도 참여했다.
‘이선제 묘지’는 1998년 6월 유명 고미술화랑 대표 김 모씨가 포함된 밀매단에 의해 500만엔에 일본으로 반출됐다. 애초 이 밀반출은 막을 수 있었다. 1998년 5월 김 모씨 등은 도굴한 ‘이선제 묘지’를 가지고 일본으로 출국하기 위해 문화재 감정실에 들러 출국허가를 받고자 했지만 당시 김해공항 문화재감정실에서 근무하던 양맹준 전 부산시립박물관장은 ‘이선제 묘지’의 가치를 알아보고 ‘절대 반출 불가’ 판정을 내렸다. 이어 양 관장은 ‘이선제 묘지’의 형태를 그리고 거기 새겨진 248자를 옮겨 적은 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신고했다. 양 관장은 기증식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문화재관리국에 신고했고 공문을 각 공항에 보낸 만큼 다시 나가는 길 자체를 차단한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1998년 6월 이들은 김포공항에서 감정을 거치지도 않은 상태로 여행가방에 넣어 이 묘지를 밀반출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수하물 심사에서 적발돼야 했음에도 출국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뇌물 때문. 당시 김포공항 세관 장모 씨는 1,200만원의 뇌물을 받고 이들의 문화재 밀반입·반출을 눈감아줬다. 검찰은 이들의 밀매를 파악하고 처벌했으나 이미 ‘이헌제 묘지’는 일본으로 넘어간 뒤였다.
‘이헌제 묘지’가 다시 행방을 드러낸 건 2014년 10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일본 한국문화재 유통과정 조사 중 한국 미술품 전문 고미술상 와타나베 산포도씨의 소개로 ‘이선제 묘지’를 발견했다. 와타나베씨는 ‘이헌제 묘지’가 밀반출품임을 듣고 재단에 도도로키 다카시씨를 소개했다. 재단과 교섭을 이어오던 중 다카시씨가 지난해 11월 작고했고 그의 유언에 따라 다카시씨의 부인인 도도로키 구니에씨는 반환을 결정했다. 이날 기증식에서 구니에씨는 “이 묘지는 남편이 생전 가장 사랑하던 미술품”이라며 “남편은 기증 요청을 받고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는 슬픔과 자식이 부모의 묘지를 기다리는 마음을 떠올리며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미술을 사랑했던 남편의 뜻을 따라 ‘이선제 묘지’에게 한일관계의 가교역할을 맡기고 싶다”고 말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는 “한국 고미술화랑이 밀반출한 것을 외국 고미술화랑이 찾고 돌려줬다”며 “‘이선제 묘지’를 밀반출한 자가 여전히 인사동 인근에서 고미술화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강조했다. 이어 “외국에서는 이런 경우 그 나라 고미술화랑계에서 매장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가 끝나는 10월31일 이후 ’이선제 묘지’를 이선제 묘가 있는 광주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이관 전시하고, ‘이선제 묘지’의 보물 등재 절차를 추진할 예정이다. 등재에는 2~3년이 소요된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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