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국내 문화재밀매단이 일본으로 빼돌렸던 ‘분청사기상감 이선제 묘지(墓誌)’가 추석을 앞두고 19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불법 반출품인지 모르고 묘지를 구입했던 일본인 소장자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설득과 권유로 기증을 결심한 덕분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묘지는 1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사료적 가치는 물론 미술사적 가치도 매우 큰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묘지의 국내 반환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결국 드라마는 직업윤리에 충실했던 일본인 고미술상의 도움과 이선제 후손들의 마음을 헤아린 일본인 소장자의 선의에 힘입어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그 속에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한 편의 스토리가 있었다.
이선제 묘지의 반환협상이 한창이던 때, 우리는 묘지에 새겨진 이선제의 5남 이형원(李亨元)에 주목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이형원은 1479년(성종 10년) 조선통신사를 책임지는 정사로 임명돼 조선통신사를 이끌게 된다. 당시 이형원은 일본 출발에 앞서 성종임금에게 탄원해 수하에 있던 일본인 통역사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러나 이형원은 쓰시마에서 풍토병을 얻어 조선통신사의 임무를 마치지 못하고 귀임 중 사망하고 만다. 말하자면 한일교류라는 공무 활동의 중책을 맡아 임무수행 중 순직한 셈이다. 우리는 묘지 반환협상 과정에서 이 사실을 기록한 실록의 내용을 공개했다. 이어 “묘지에 등장하는 분이 바로 이런 분이고 묘지의 주인공이 이분의 아버지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인도적 차원의 기증반환을 설득했다. 준비해간 ‘조선왕조실록’ 중 관련 내용의 사본도 전달했다.
협상 과정에서 소장자가 지병으로 사망하기도 했지만 고인의 뜻을 받은 유족에 의해 묘지는 무사히 돌아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그리고 유족 측은 “이형원의 혼이 일본으로 다시 건너와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묘지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한일우호와 이선제 후손을 생각해 무상기증을 결정했다”며 기증 소감을 덧붙였다.
묘지는 한국과 일본의 뜻있는 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결코 돌아올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묘지 속 실존인물의 스토리가 일본인 소장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 이번 묘지 기증으로 한일우호의 아름다운 스토리가 새롭게 더해졌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협력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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