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서류 파쇄하고 휴대폰 바꾸고...바짝 엎드린 기업들 "숨이 막힌다"

[기업이 힘들어하는 진짜 이유 4가지]

③언제 사정대상 될지…불안한 사회

정부 잇단 "적폐" 언급에 기업인들 "잠재적 범죄자된 기분"

당국, 수사결과로 얘기하면 되는데 '말'로 겁주는 경우도

무분별 조사 계속 땐 투자 위축·경제에도 악영향 불가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원가 부풀리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7월18일 KAI 협력업체를 추가 압수수색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A기업은 일주일에 한 번씩 서류를 파쇄한다. 사정 당국의 혹시 모를 압수수색 등을 대비해서다. B기업은 직원들에게 ‘대외적으로 정부에 대한 언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정권에 비판적인 말을 해서 밉보였다가 사정 부메랑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다.

요즘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언제 수사 당국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회사 기록 관리부터 사람과의 만남, 대화에 대한 조심을 최고조로 높이고 있다. 물론 이전 정부에서도 많은 기업 수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새 정부는 사정의 범위와 강도가 어느 때보다 넓고 세다는 게 기업인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회는 갈수록 이분화돼가고 있고 이념 역시 불필요하게 과잉인 상태”라면서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 연장선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과 불공정 거래 척결, 재벌개혁을 국정과제의 맨 앞단에 두고 검찰·경찰·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 등을 총동원해 광범위한 수사와 조사를 벌이고 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연일 보도되는 기업 수사 상황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이런 관행은 문제 있다’ ‘조심하라’ 등의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 숨이 막힌다”며 “정부는 그럴 의도는 아니라고 하지만 기업인들은 잠재적 범죄자 같은 기분으로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중소기업의 임원은 “새 정부 들어 세무조사를 너무 많이 한다”며 “주위 기업들을 보면 세 곳 중 한 곳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고 어떤 기업은 지난해 받았는데 올해 또 조사를 나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실제 새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채 안 됐지만 수사·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주요 기업들만 열 손가락이 넘는다. 삼성전자, 한화, 대한항공,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 대림, 부영, 하림, 현대위아, 미스터피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진행된 최순실 사태로 수사 받은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이건희 회장의 자택 인테리어 공사 관련 회삿돈 유용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미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 상태여서 중요한 투자 결정 등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알려졌다. 최근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 부문 대표는 “선점 경쟁이 치열한 인공지능 분야에서 글로벌 업체 인수를 놓쳤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이례적으로 검찰과 경찰로부터 동시에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 19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자 대한항공 대표가 직접 경찰 소환 조사를 받기도 했다. 통신 3사와 대림·하림 등은 새 정부 들어 위상이 대폭 높아진 공정위의 조사 대상에 올라 있다. 공정위는 ‘재벌 저격수’로 불린 김상조 위원장 취임 이후 일감 몰아주기, 하도급에 대한 ‘갑질’ 등의 행위에 대한 압박 강도를 크게 높이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남용 문제를 전담 조사하는 기업집단국을 신설하기도 했다. 기업집단국은 국장 포함 총 54명으로 공정위의 국단위 조직으로 최대 규모다.

잘못이 있으면 처벌을 받는 것은 마땅하나 문제는 의욕만 앞선 무리한 수사도 꽤 눈에 띈다는 점이다. 분식회계와 채용비리 등으로 전방위 수사를 받고 있는 KAI의 경우 관련자에 대한 구속 영장이 일곱 번 청구됐지만 네 번이 기각됐다. 수사 과정에서 김인식 KAI 전 부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무리한 수사로 사달이 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사정 당국은 수사 결과로 얘기하면 되는데 ‘말’로 겁주기를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김 위원장은 언론에서 “현대자동차가 지배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삼성 같은 리스크에 직면할 것”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 했다” 등의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기업은 그렇지 않아도 사정 당국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한데 기관의 수장이 공식적인 조사 대상도 아닌 기업을 거론하며 지적하면 불필요한 공포감만 키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새 정부 들어 커지고 있는 반(反)기업 정서 등 사회 분위기도 기업들에 부담이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 이후 기업은 부패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데 사실 최순실 사태에 연루된 기업들은 정부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협조한 피해자 측면이 큰 거 아니냐”며 “광범위한 수사에 사회 분위기까지 겹쳐 기업하는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을 벼랑으로 몰고 가는 현상이 계속되면 국가 경제에도 이로울 것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정상적인 거래까지 사익 편취, 불공정 거래로 몰고 가고 있어 우려스럽다”며 “무분별한 수사와 조사가 계속되면 기업들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서민준기자, 이상훈·박해욱기자 morando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