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관함식은 지난 1346년 영국에서 비롯됐다. 프랑스와 치른 100년 전쟁의 서막에서다. 본격적인 프랑스 침공을 앞둔 영국왕 에드워드 3세가 함선들을 템스강 하구에 모아놓고 상태를 점검한 것이 관함식의 시초로 꼽힌다. 주로 영국에서 개최되고 발전돼온 관함식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세력 과시와 우방국과의 우호 증진. 20세기 중후반 이후 관함식은 후자, 즉 외국과의 우호관계 증진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이전까지는 전력 과시 목적이 훨씬 강했다. 특히 제국주의 광풍이 불고 포함외교가 절정에 달했던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관함식이 각국으로 번졌다.
관함식을 누구보다 많이 활용한 국가는 근대 이후 바다를 지배한 영국. 최전성기인 19세기 중후반께 전 세계 해군 함정 순톤수의 70%를 점유하고 20세기 초반까지 2위 해군국보다 2배 이상의 전력 유지를 목표로 삼았던 영국 해군은 관함식을 무력시위용으로 써먹었다. 역대 국왕들의 즉위 기념식에 동원하고 주요 전쟁을 앞두고도 함대를 도열시켜 국민과 병사들의 자신감을 북돋았다.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4년 7월 위기가 고조되던 상황에서 영국 해군이 펼친 관함식은 바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대형 전함만도 55척, 순양전함 4척, 순양함 27척, 경순양함 28척, 구축함 78척, 여기에 수많은 어뢰정·소해함·구난함·우편함·병원함 등이 영국 남부 군항인 스핏헤드를 가득 메웠다.
군함으로 압도적인 전력 우위를 과시하려는 습성은 일본도 이어받았다. 개항(1854)한 지 불과 14년 만이자 메이지유신이 시작된 1868년부터 관함식을 열었다. 부정기적으로 관함식을 개최한 옛 일본은 1933년 8월 요코스카 관함식에서 161척(84만 7,766톤)에 항공기 200여대를 동원했다. 해상자위대도 옛 일본의 관함식 습관을 물려받았을까. 해상자위대는 2~3년(최근에는 3년)마다 한 번씩 관함식을 열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수상함 전력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중국도 관함식에 끼어들었다. 중국판 이지스함과 랴오닝급 항공모함, 핵추진전략잠수함 등이 전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관함식으로 가장 재미를 본 나라는 정작 따로 있다. 20세기 초반 미국은 세계일주형 관함식을 계기로 해양국가로 우뚝 섰다. 해군부 차관 출신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형 전함 16척에 흰색 페인트를 칠한 뒤 ‘대백함대(大白艦隊·the Great White Fleet)’라는 이름을 붙여 1907~1909년에 전 세계 일주 항해에 내보냈다. 남미를 돌아 호주와 아시아·유럽을 순방하며 대백함대는 가는 곳마다 군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미국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출장형 관함식이 오늘날 세계를 주름잡는 미국 해군의 신고식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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