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업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주변 사람들도 깜짝 놀랐죠.”
권도균(54) 프라이머 대표는 지난 9일 서울 강남역 주변 오피스텔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인생·창업 스토리와 함께 스타트업 투자원칙, 성공요건, 정부에 바라는 점 등을 차분히 털어놓았다. 그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전자결제 회사인 이니텍·이니시스 등 5개사를 창업해 모두 성공시킨 뒤 매각해 수천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 2010년부터는 성공 경험이 있는 파트너들과 함께 스타트업 투자·멘토링에 나서왔다.
“제가 수줍어하고 사회성도 없고 글쓰기와 음악을 좋아해 장남이 아니었다면 작곡과나 국문과에 갔을 거예요(웃음). 그런데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양조장을 하다가 제가 중고등학생 시절에 잘 모르는 사업을 벌이면서 가산이 무너졌죠. 빨리 취업해 집안을 먹여 살리려고 전산학과에 갔어요.”
성향이 문과였지만 다행히 전산학과도 잘 맞았다. “제가 ‘82학번’인데 IBM 대형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했어요. 1983년에는 퍼스널컴퓨터(PC)가 나와 돈 많은 친구들은 샀지만 저는 비싸 만져보지도 못했죠.”
그는 결국 졸업 후 데이콤 프로그래머로 10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원도 한도 없이 컴퓨터에 몰입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실력’을 갖췄다고 자부한 그는 행정전산망 프로젝트를 하다가 데이콤연구소로 옮겼다.
이때 인생의 결정적 전기가 생긴다. 1994년 월드와이드웹(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로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공간)을 접한 것. “보는 순간 세상을 바꿀 거라고 느꼈죠. 너무 흥분해 아내를 밤10시에 회사로 데려가 보여줬다니까요(웃음). 일찍 보안·전자결제 기술을 접할 기회를 잡은 것이죠.”
그는 컴퓨터를 1,000만원에 구입해 밤과 주말에 소프트웨어(SW)를 만들어 일반에 무료로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너무 재미있어 ‘월드 와이드 웹 포럼’을 만들어 매년 콘퍼런스를 열었고 나중에는 수백 명이 참여할 정도로 키웠다. “당시 과장이었는데 회사가 전자결제 일을 할 기회를 안 줘 ‘내 기술로 창업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드디어 1997년 1월 퇴직금 등 1억원을 모아 이니텍을 창업했다. 전자결제는 투자가 많이 필요해 보안 사업부터 시작했다. 그렇지만 행운의 여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해 말 IMF 외환위기의 파고에 휩쓸린 것이다. 1998년에는 투자자가 ‘전자결제 회사를 별도로 세우면 2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해 이니시스를 창업했다. “두 회사 모두 인건비는 줘야 하는데 매출은 프로젝트가 끝난 뒤 어음으로 받아 현금 흐름이 좋지 않았어요. 1999년까지는 집에 봉급을 몇 번 못 갖다 줬죠. 그래도 비교적 초기 멤버가 오랫동안 잘 버텨줬어요.” 그는 1999년 고생한 50~60명의 초기 직원에게 개인 지분으로 25%의 주식을 스톡옵션으로 나눠주기도 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내공도 생기고 마침 김대중 정부의 벤처지원 정책으로 타이밍도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2000년 인터넷뱅킹과 전자상거래가 시작되며 보안 제품이나 전자결제 서비스가 잘 팔렸어요. 이니텍은 2001년, 이니시스는 2002년 코스닥에 상장했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성장했죠. 비정규직 구내식당 아주머니에게도 주식을 나눠줬는데 ‘상장하니 몇천만 원이 됐다’며 부침개를 몇 광주리나 해 사무실로 찾아오셨어요. 감동적이었죠. 10인 10색이라고 스톡옵션 줄 때 세금 대신 안 내준다고 욕한 직원도 있었지만요(웃음).”
물론 모든 것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 신규 사업(온켓)을 벌이다가 이니시스가 망할 뻔하기도 했다. “현금이 100억원 넘게 있었는데 2000년에는 현금을 다 쓰고도 무려 170억원이나 빚을 져 제가 지급보증을 섰지요. 온켓 사업을 다음커뮤니케이션에 40억원에 넘기고 50~60명에서 300명까지 늘어났던 직원도 원래대로 정리해야 했어요.”
외부 전문가로 인해 곤란해진 적도 있지만 5개 회사를 세우는 과욕에도 힘든 터널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전문경영인을 최고경영자(CEO)로 위촉해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이라는 게 권 대표의 평가다. “이니텍도 2년 만에 외부 마케팅 전문가와 공동대표를 하다가 1~2년 뒤 단독대표로 추대했죠. 이니시스는 2002년 외부 전문경영인을 영입했고 2005년에는 내부 인사에게 대표를 맡겼죠. 6명 넘게 대표를 시켰는데 많은 분이 잘해줘 저는 전략 수립에 집중하고 한마디로 복 받았죠(웃음).”
2005년에는 이니시스의 알짜배기 자회사인 KMPS(신용카드 밴사)를 세계 최대의 결제 회사인 미국 퍼스트데이터에 730억원에 매각했다. SK와 2000년 총 50억원을 투자해 만든 회사를 14배 이상에 팔아 이 중 350억원을 받았다. 더욱이 미국 회사가 1년6개월은 한국 지사장을 맡는 조건을 붙여 이때 선진 경영 시스템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2007년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문화와 경영을 배우고 싶어 UC버클리 방문연구원이 되기도 했다. 마이클 포터의 전략이론이라든지 경영학 수업 등 학기당 2~3과목을 2년간 청강했다. “UC버클리 청강과 퍼스트데이터 한국 지사장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필드에서만 뛰다가 이론을 접할 기회를 얻었죠.”
2008년 말에는 미국 투자 회사로부터 이니텍과 이니시스를 3,000억원의 기업가치에 사겠다는 제안을 받고 매각했다. 당시 시가총액이 총 1,000억원 미만이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좋은 조건이었다. 이후 미국 투자 회사도 많은 이익을 남기고 이니텍은 BC카드, 이니시스는 KG그룹에 각각 매각했는데 지금은 가치가 몇 배 더 올랐다. 모두가 ‘윈·윈·윈’한 것이다.
그에 앞서 권 대표는 대기업과의 조인트벤처였던 한국인터넷빌링(도시가스·전기요금 등의 고지서를 보내고 납부하게 하는 서비스)은 서울도시가스, 한국버추얼페이먼트(인터넷쇼핑에서 카드정보와 유효기간 암호화해 보냄)는 BC카드에 일찌감치 넘겨 5개 회사를 모두 매각한 셈이 됐다.
“갑자기 끈이 떨어진 것 같아 사업을 더 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평생 다 못 쓸 돈을 벌었으니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라’고 권하더군요. 우리 사회를 위해 뭘 할까 고민하다 결국 스타트업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이에 2010년 1월 프라이머를 만들어 투자하고 멘토링할 파트너를 규합한다. 초기에는 장병규 블루홀 대표(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장)와 이재웅 전 다음 대표 등이 파트너로 참여했다. 조만간 출범할 시즌 5에는 윤재승 대웅제약 회장,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 실리콘밸리에서 10년 이상 투자한 이기하 대표, 코스닥 상장사인 슈피겐의 김대영 대표,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출신으로 중국에서 교육 회사를 크게 성공시켜 매각한 샘 황이 의기투합했다. 파트너는 각자 일을 하며 스카이프 등으로 멘토링을 한다. 시즌 5까지 총 20여명의 파트너가 210억원을 출자했고 시즌 1~4에 총 88억원을 133개사(미국팀 18개 포함)에 투자했다. 그는 “스타트업 성공률이 5년 20%, 10년 5%에 그치는데 시즌 1에 투자한 17곳 중 60%가 살아 있고 파트너에게 원금을 돌려주고도 수익률이 8.6배나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미다스의 손’은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지 궁금했다.
“기술기반회사나 e커머스, O2O(온라인으로 오프라인 혁신) 등의 분야에서 창업자의 역량과 됨됨이, 맨파워, 비즈니스모델을 보죠. 창업자가 일에 몰입해 소명처럼 생각하고 인사이트(통찰력)가 있어야 합니다. 겸손하고 진실하게 ‘내가 잘 모르고 부족하고 틀릴 수도 있구나’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성장 속도가 빠르죠. 비즈니스모델도 공유경제니 트렌드니 하는 관념적 얘기보다 상식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해야 성공해요.”
구체적인 성공·실패 사례도 들었다. “중고물품을 취급하는 번개장터에 2010년 2,000만원을 투자했는데 3년 뒤 네이버에 103억원에 매각했어요. 기업가치가 320억원이나 되는 스타일쉐어는 대표가 공대 3학년 때 패션에 인사이트가 있는 것을 보고 투자했죠. ‘모델 사진이 지겹다’며 일반인의 거리 패션으로 신선한 패션앱을 만들었어요. 역시 수백억 원의 가치인 마이리얼트립은 해외 여행객을 현지 가이드와 바로 연결해 패키지 여행보다 재미있고 가이드는 돈을 더 벌지요. 데일리호텔은 호텔이 밤10시 넘어 그다음 날 방 예약을 포기하면 헐값에 넘겨받아 저렴하게 팔아 투자도 많이 받고 이제는 아시아로 진출하려고 하죠. 반면 실패한 곳은 대개 CEO가 인터넷에 취약하거나 비즈니스모델이 안 맞거나 멤버 간 화합이 안 되거나 학습 속도가 느린 곳이에요.”
권 대표의 꿈은 뭘까. “시즌 1 스타트업은 1,000억원까지 기업가치가 되는 곳도 있는데 나중에 매각하거나 상장한 뒤 일부를 프라이머에 출자해 후배 창업가를 도왔으면 해요. 세금으로 만든 관제 창업 생태계가 아니고 민간의 자발적인 창업 생태계를 만드는 거죠. 2~3년 안에 프라이머 대표를 넘겨주고 파트너로 남아 멘토링만 열심히 하고 싶어요(웃음).”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약력 △1963년생 △1990~1997년 데이콤 종합연구소 대표 △1997년 이니텍 대표 △1998년 이니시스 대표 △2000년 KMPS 대표, 한국버추얼페이먼트 대표, 한국인터넷빌링 대표 △2010년 프라이머 대표 △2015년 국민대 글로벌창업벤처대학원 객원교수
“정부가 풀어야할 건 돈 보다 규제…신산업 싹 자르지 말아야”
30~40년전 만들어진 보건법으로
방문네일아트 사업 막는 게 현실
대기업·舊산업 이익만 대변 말고
네거티브규제로 시장 숨통 터줘야
“벤처 창업을 지원할 때 정부가 매년 조 단위를 푸는 것보다 규제를 풀어야 해요. 돈만 풀면 부작용이 생기죠.”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지금 규제는 공공의 이익보다 기존 산업과의 오랜 유착에 따른 것으로 일종의 산업 적폐”라며 “대기업과 구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신산업의 싹을 미리 자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경쟁 환경을 만들고 일정한 규모가 되면 공공의 이익과 안녕을 해치는지 봐 규제하면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공무원과 정치인이 너무 열심히 일해 이니시스를 창업할 때보다 지금 규제가 더 많아졌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전자결제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여신전문금융업법의 형식논리로만 보면 불법이었다”며 “지금 규제라면 못했을 텐데 5~6년 하며 커지니까 ‘카드깡’도 들어오고 부정적인 일이 생겨 재정경제부·국세청에서 논의해 법을 약간 고치고 합법화해 산업은 발전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중국은 신산업이 클 때는 내버려뒀다가 규모가 커지면 문제점을 파악해 법을 보완하며 양성한다”며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을 역설했다.
권 대표는 정부가 앞으로 3년간 매년 1조원을 벤처스타트업에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돈보다 규제를 풀어 상상력이 발휘되도록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수수료를 받고 정부지원금 따주는 컨설팅사도 많다. 돈에 초점을 맞추면 농업에서 보듯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며 “막혀 있는 것을 터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 능력 있는 사람이 살아남고 이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인인증서도 공인인증기관 외에 민간에도 맡기고 신차·중고차 거래, 자율주행차, 핀테크, 헬스케어 등의 규제도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심지어 방문 네일아트마저도 30~40년 전 만들어진 보건법으로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 부문에 세금으로 벤처 생태계를 망가뜨리지 말고 시장을 키우라는 제안도 했다. 그는 “더치트닷컴이 돈만 받고 물건은 안 보내는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한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 10년 넘게 했는데 경찰청이 따라 하며 내부 포상까지 했다”며 “외국인이 미리 난타 티켓 등을 예매해 방한하도록 4~5년 열심히 한 스타트업도 있는데 한국관광공사가 똑같은 모델에 7~8억원의 예산을 썼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과 유럽은 공공 부문이 (국가안보에 관계되지 않으면) 제품을 사준다. 미국 정부는 구글 서비스를 쓴다”며 “한국은 ‘공공 부문을 민간에 맡길 수 있느냐’며 공무원전산원 등 소위 위장계열기관이 엄청 많다”고 한탄했다.
그는 4차산업혁명위원회에 대해서도 “미래 먹거리를 찾는 절박한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며 “장병규 위원장이 사업 경험도 많고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려고 할 텐데 말 잔치로만 끝나지 않고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대통령과 정부가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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