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군은 과연 북한이 총격을 가해도 대응하지 않는 무능한 군대일까. 북한군 병사 1명이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넘어 귀순한 과정을 둘러싸고 잡음이 무성하다. 무엇보다 북한군 추격조가 권총과 AK 자동소총 40발을 발사하는 동안 우리 군은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다는 질책이 쏟아지고 있다. 국회 질의와 대부분 언론의 보도대로라면 한국군은 책임을 방기한 군대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을 점검(fact check)해 보자.
◇북한군 총격에도 대응 안 했다?=개요는 이렇다. 사건이 발생한 최초 시각은 13일 오후3시14분께. 판문점 내 군사분계선(MDL) 북쪽에서 북한군 3명이 다급히 뛰어가는 모습이 우리 초소의 관측에 잡혔다. 북한 병사 1명이 지프를 타고 MDL로 접근하는 모습도 동시에 포착됐다. 지프가 배수로에 빠져 기동이 불가능하자 이 병사는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뒤쫓아온 북한군 4명이 총격을 가했다. 이후 상황은 잠잠해졌다. 16분 뒤 MDL 이남 50m 부근 우리 쪽 구역의 낙엽이 쌓인 지역에서 움직이지 않는 북한군 병사를 열상감시장비(TOD)가 찾아냈다. 4분 뒤 귀순자가 부상당했다고 판단한 대대장은 간부 2명을 대동하고 낮은 포복으로 접근, 귀순자의 신병을 확보했다. 귀순자는 유엔사 소속의 의무후송헬기에 실려 4시45분께 총상 치료 전문의료기관인 수원 아주대병원에 도착했다. 분명히 우리 군은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다.
◇‘슬기로운 장병과 용감한 대대장’=귀순병사를 쫓던 북한군이 쏜 총탄이 우리 쪽에 넘어왔음에도 대응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으나 군의 설명은 다르다. 무엇인가 후다닥 지나갔고 총성이 수십 초 동안 울렸다는 점에서 장병들은 북쪽의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북측이 가한 총탄이 우리 쪽에 넘어오는지조차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 JSA 근무 장병들은 북한 소초를 비롯해 대북 경계를 강화하며 두 가지 조치를 취했다. 무장을 K-2소총으로 바꾸고 증원 병력을 불렀다. 유엔군 사령부에 소속된 주한미군 관계자는 “한국군이 대단히 슬기로울 뿐 아니라 용감하게 대응했다”며 “미군 기준으로는 표창감”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와 대응·구출·후송까지 JSA 교전규칙대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유엔군 사령부는 곧 해당 동영상을 공개할 예정이다. 불필요한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JSA는 유엔군 관할인데다 교전규칙도 달라=우리 군 JSA 경비대대에서 일어난 일을 미군이 평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휘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군 JSA 대대는 육군 3군 사령부 직할부대지만 작전지휘권만큼은 유엔군에 넘어가 있다. 평시든 전시든 유엔군 사령관의 지시를 받는다. 주한 유엔군 사령관은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겸임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주한미군 사령관으로서 브룩스와 유엔군 사령관으로서 브룩스의 역할이 다르다는 점이다. 한미연합군이나 미군 사령관으로서 브룩스는 도발 격멸이지만 유엔군 사령관의 임무는 정전상태 유지에 있다. 한국군 JSA 대대의 임무도 마찬가지다. 미군 관계자는 “한미연합사와 유엔군, JSA의 교전규칙이 각각 다르다”며 “비밀사항이어서 밝힐 수는 없으나 JSA 교전규칙의 지향점은 위기 완화에 있다”고 말했다. 맞으면 즉각 보복하는 서북도서 방위태세의 기준을 JSA에 적용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북한도 자제한 흔적 있다=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북한이 MDL 남쪽으로 사격한 적은 처음이냐’는 질의에 그렇다고 답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1984년에는 관광 가이드인 구소련의 민간인 한 명이 MDL을 넘어 탈출했을 때 북한군이 우리 측 지역까지 들어와 총질을 가했다. 30분간 이어진 총격전으로 북한군 병사 3명과 우리 측 병사 1명이 죽었다. 이번에 북한군 4명 가운데 판문점 경비병력 3명과 지원병력 1명이라면 탄창에 만재한 장탄 수만 78발에 이른다(백두산 권총 1정당 장탄 수 16발, AK 소총은 30발). 북한이 40발을 쐈다면 잔탄이 남았거나 새로운 탄창으로 교환하지 않았다는 얘기에 닿는다. ‘소총 반입은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일부 보도가 있었으나 이 역시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정전협정에 따르면 자동소총이 금지되고 소총은 반입이 가능하다. 다만 권총과 소총을 동시에 휴대할 수 없다. AK 소총이 자동소총이지만 조정간을 단발에 두고 사용한다고 주장할 수 있어 정전협정 위반 여부는 해석이 애매한 부분이다. 우리 JSA 대대 역시 K-2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신세대 장병 꺼려서 대대장이 직접 구출했다?’=일각에서는 신세대 장병들이 몸을 사려 대대장이 나섰다고 비판하지만 그렇지 않다. JSA 내 실제 근무병력은 소대급 규모. 더욱이 이날은 관광객이 없는 월요일이어서 초소 근무만 서는 날이었다. 군에 따르면 자원자가 있었으나 대대장이 적의 총탄이 날아올 수 있는 상황이라며 직접 나섰다.
◇옥에 티, 세 가지=군의 잘못도 없지 않다. 첫째 JSA 대대가 축소 근무인데다 북쪽 감시에 주력했다고 하지만 우리 쪽 지역으로 넘어온 귀순병사가 부상을 입은 채 16분간 방치됐다는 사실은 분명한 잘못이다. 간첩이었다면 뚫린 셈이다. 둘째, 국방부 장관에 대한 보고가 늦어졌다. 셋째 송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하게 답변해 우리 장병들의 침착하고 슬기로운 대응을 무능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391흥진호’ 납북 사건에서도 지적된 군의 늑장 보고와 장관의 애매한 답변이 이번에도 반복된 것이다.
◇정쟁으로 군을 욕보이는 안보 포퓰리즘=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국회에 있다. 정쟁을 위해 군의 잘못을 애써 만들어내 퍼뜨리는 일부 의원들의 행태로 군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는 결과가 되풀이되며 아예 구조화하는 양상이다. 군의 젊은 장교들은 “안보 제일주의를 주창하는 의원들이 군의 적절한 대응을 무능으로 둔갑시키는 안보 포퓰리즘과 흑색선전에 젖어 있다”며 “국회 국방위에 진출한 군 출신 의원들은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 입을 다물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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