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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올림픽 휴전





기원전 775년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 고대 올림픽은 초창기에는 제우스 신을 숭배하기 위한 소규모의 지역 축제였다. 이 행사는 이후 종목과 참가도시 수가 늘어나면서 기원전 5세기에는 그리스 민족 전체의 행사로 확대됐다. 그런데 행사가 커지면서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했다. 크고 작은 전쟁 때문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머리를 맞댄 도시국가들은 결국 행사를 전후해서는 싸움을 중지하기로 했다. ‘신성한 휴전’이라는 뜻을 가진 ‘에케케이리아(Ekecheiria)’ 전통이다.

에케케이리아 정신은 2,500년이 훌쩍 지난 1990년대 초 보스니아 내전을 계기로 부활했다. 유고연방 해체 과정에서 인종·종교를 둘러싼 민족 갈등이 ‘인종청소’라는 비극적 사태로 치닫자 유엔은 1993년 10월 총회에서 올림픽 기간에 모든 분쟁을 중지하는 ‘휴전협정’을 제도화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유엔 결의 후 첫 올림픽인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부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그해 2월13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는 세르비아계의 대규모 폭격으로 민간인 6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후에도 유엔은 여름·겨울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휴전을 결의했지만 단 한 차례도 신성한 휴전이 지켜진 적은 없었다. 1998년 일본 나가노 겨울올림픽은 미국이 전면 핵사찰을 거부하는 이라크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경고하면서 긴장감 속에 치러졌다. 중국 정부는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직전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에 대한 무차별적 탄압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지난 14일 유엔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27차 총회에서 전체 193개 회원국 중 157개 회원국의 공동제안을 통해 만장일치로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채택했다.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를 평화의 제전으로 승화시키자는 국제사회의 염원을 담은 결의다. 그런데 이날 회의에 유엔주재 북한대사의 모습은 없었다고 한다. 평창올림픽 기간만이라도 전 세계가 전쟁과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나 마음껏 축제를 즐길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정두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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