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장편소설 ‘뇌’에서 인간은 그 시대에 가장 정교하거나 혁신적인 발명품을 뇌와 비교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시계가 발명됐을 때는 뇌를 시계와 비슷한 정밀기계로 봤고 증기기관이 발명되자 뇌를 모터와 같은 것으로 봤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촉발된 3차 산업혁명, 즉 정보혁명 시대에 뇌의 미래는 컴퓨터에 달려 있었다.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은 다양한 분야가 융합(convergence)하고 모든 것이 연결(connection)되며 지금껏 달성하지 못한 수준의 지성(intelligence)을 발휘해 인류사를 바꿀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뒤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점차 인간 중심 사회의 근본에 대한 고민을 가져왔고 이제 인간의 지능을 대체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이러한 고민은 심각한 우려로 바뀌고 있다. 이런 중요한 시대에 뇌 연구는 4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주도하면서도 충격과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인간 중심적이며 미래 지향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먼저 정부가 ‘치매 국가책임제’를 천명하고 뇌 질환에서 국민을 보호한다고 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방향이다.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많은 것이 AI 기반의 뇌융합기술로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다. 뇌와 기계의 연결(Brain-Machine Interface·BMI)은 물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주창한 것과 같이 ‘마음으로 서로 소통하는 날’에 필요한 인간과 인간의 연결(mind-mind interface) 기술 개발도 매우 중요하다. 최근 뇌 질환 치료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는 ‘전자약(electroceuticals)’ 시장은 오는 2021년 252억달러(약 29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역시 BMI 기술의 고도화를 통해 더욱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과거 산업혁명으로 나온 기술이 우리 사회에 천천히 스며든 것과 달리 4차 산업혁명은 쓰나미같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AI, AI와 AI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까지도 고민해야 하는 아주 복잡한 세상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AI를 만드는 사람과 이를 활용하는 사람의 윤리관이 그동안 기계를 만드는 사람에게 요구된 윤리관보다 매우 높아야 한다. 만일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한 사회·윤리적 규칙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미국 사회학자 윌리엄 필딩 오그번이 의견을 제시한 것처럼 대규모의 문화지체와 갈등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뇌융합 기술을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뇌신경윤리에 대한 사회적 공론을 모아야 한다.
빠른 기술혁신과 새로운 가치관의 등장에 따라 그동안 생물학 전공자 중심이던 뇌 연구 패러다임 역시 물리학이나 수학 전공자까지 포함한 새로운 뇌 연구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혁신적인 미래 뇌 연구자 양성 전략도 고민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시급한 뇌 연구 주제는 ‘치매 등 뇌 질환 극복’ ‘BMI 기술 고도화’ ‘뇌 이해 기반의 차세대 AI 개발’ ‘인간 중심의 뇌신경윤리 가이드 확립’ ‘미래 뇌 연구자 양성’ 등이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뇌과학 기술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으며 이는 우리가 뇌를 이해하는 범위와 깊이를 확대·심화해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뇌에 대해 얼마나 먼 곳까지 지식의 지평을 넓힐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소설 ‘뇌’를 한 번 더 곱씹어본다면 인류의 미래는 결국 뇌과학과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의 ‘밀당(밀고 당기기)’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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