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기업들의 기술발전에 도움을 드려 보람이 있다”면서 “산업과 기술의 미래를 고민하는데 요즘은 미국 하버드대 제휴병원에서 의사를 하며 증강현실(AR)을 활용한 의료벤처를 하는 아들과의 정보교류도 흥미롭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메디컬·일렉트로닉스용 반도체칩을 주로 연구한다. 스마트폰 카메라칩과 사물인터넷(IoT) 에너지 수확 칩 등 다양한 기술을 내놓고 있다. 요즘은 X레이 필름사진 대신 탐지영상을 바로 캡처하는 반도체칩과 3차원 초음파용 반도체칩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는 “파킨슨병 환자가 팔다리를 막 떠는데 뇌에다 탐침을 꽂아 전기자극을 줘 치료하는 칩도 설계하고 심장에 넣는 칩도 개발하는데 시장이 굉장히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디스플레이 가상현실(VR), AR 기술에 많은 센서가 필요한데 구글 글라스 AR 기기도 만들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나 휴대폰용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디스플레이도 픽셀회로를 아주 작게 만드는 반도체칩 역시 개발했는데 기대가 된다”고 설명했다. 3차원 초음파로 뱃속의 태아를 생생하게 보고 유방암 진단도 정확히 할 수 있으며 X레이 디텍터로 치아 상태를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다며 뿌듯함을 피력했다.
그의 기술이 실용화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삼성전자가 최근 ‘CES 2018’에서 화질이 선명한 조립식 대형 차세대 TV를 내놓아 히트를 친 것을 뒷받침했고, 그의 액정표시장치(LCD) 드라이버IC 특허를 활용하지 못하면 LCD를 못 만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는 “삼성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화소구조 등 기술이 다 들어가니까 재미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반도체를 반도체칩(정보저장), 모뎀칩(정보 송수신), CPU(정보처리), 센서(정보생성), 드라이버(전기신호로 바꿔줌), 전원생성 칩까지 6가지로 분류하는 게 맞다”며 “메모리는 한국 기업이 워낙 잘하지만 나머지는 학교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정부 부처 간 협업도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지난 1980년대 반도체메모리를 못할 때 합심해 밀어줬고 1990년대 디스플레이를 키울 때도 일본이 잘하는 LCD를 어떻게 좇아갈까 굉장히 고민했다”며 4차 산업혁명 성공을 위한 범정부적 노력을 촉구했다.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반도체칩을 6년간 연구했던 그는 1992년 모교인 한양대로 부임할 때의 일화도 털어놓았다. 그는 “당시 PDP와 LCD를 모른다고 해도 안 믿고 연구를 종용했다”며 “연구하려면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니 대기업들이 학교 밖에 사무실과 장비·인력을 지원해줘 4개월간 열심히 해 LCD와 PDP를 알게 됐고 1994년에는 5년간 총 1,000억원의 정부 디스플레이·반도체 연구과제를 기업 5곳에 배분하고 감독하는 역할도 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석사는 ‘Master’라 무술 사부처럼 한 분야 전문가지만 박사는 ‘Ph.D’답게 어느 분야든지 학문을 하면 된다”고 스탠퍼드대 지도교수(파비안 피즈)가 가르쳐줬다고 소개했다.
그는 “물리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부농이셨던 부모님이 ‘절대 안 된다. 의대를 가라’고 해 전자공학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결과적으로 잘됐다”며 “초등학생이 e메일로 면담을 신청해 점심도 같이했는데 젊은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꿈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며 3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