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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에세이] 암환자들이 가장 실망할 때

오상철 고려대구로병원 종양내과 교수

대한종양내과학회 홍보위원장





2년 전 수술이 불가능한 전이성 대장암 판정을 받은 50대 가장 A씨.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항암화학치료를 받아왔지만 기대와 달리 암이 악화한 것으로 판명됐다. 이미 항암제를 두 차례 변경한 상태에서 암이 악화돼 약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이제는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항암제를 쓸 수밖에 없다”는 필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는 매우 실망했고 망연자실해했다. 평소 매우 낙천적이던 그의 이런 반응에 의사로서 미안함과 함께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에 대한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암환자를 보는 종양내과의 진료실은 세상사가 다 그렇지만 희로애락이 극명히 교차하는 곳이다. 암이 우리에게 질환 이상의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의사와 환자가 가장 좌절하는 순간은 더 이상 처방할 수 있는 약이 없을 때다. 환자와 가족은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때로는 분노한다. 환자의 체력이 충분한데도 듣는 항암제가 없어 치료를 못한다면 의사 입장에서도 가슴 아픈 일이다.

처방할 치료제가 없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약효와 안전성을 검증받아 판매허가를 받은 새 항암제가 없는 경우다. 미국 등에서는 임상시험을 거쳐 판매허가를 받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일본에 비해 인구나 환자가 적어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글로벌 임상시험 대상국에서 빠졌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 환자들은 이 약으로 치료받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처럼 표준치료가 끝났더라도 효과적인 항암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약효·안전성이 검증되고 외국에서는 사용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약이 적지 않다. 의사들이 글로벌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하기 위해 애를 쓰거나 직접 약을 개발해보겠다며 연구에 몰두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약효·안전성이 검증돼 판매허가를 받더라도 약값 대비 효과, 즉 비용 효과성을 인정받아야 건강보험 적용이라는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판매허가를 받거나 현재 임상시험 중인 항암제들은 대부분 치료기간 약값만 수백만~수천만원으로 비싸다. 특정 유전자·단백질을 억제하는 표적항암제, 암세포가 정상세포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을 막는 면역관문억제제, 우리 몸 안의 면역세포를 활용해 암세포에 대한 전투력을 높인 면역세포치료제 등이다.

국내 판매허가를 받은 항암제라면 의사가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럴 때는 개인의 경제적 사정이나 암보험·실손의료보험 가입 여부에 따라 약제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약값을 전부 부담해야 하는 환자와 가족들은 정부를 원망하거나 우리 사회가 불공평하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금전적 부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할 수도 있다.

국가와 건강보험 재정이 한정돼 있으므로 모든 약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국도 비용 효과성을 따져 보험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가 많다. 하지만 전 국민 건강보험 체제에서 건강보험 적용을 못 받는 약제 사용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환자와 가족에게 너무 많은 짐을 안겨준다. 우리 사회가 넉넉하게 돼 모든 약제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전이라도 외국에서 약효·안전성을 인정받아 표준치료에 쓰는 항암제는 국내에서도 큰 부담 없이 쓸 수 있게 해줄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 재정 급증이 문제라면 해당 항암제에 대해서는 환자 측의 본인부담비율(현행 5%)을 높여 차등화하는 방법도 있다. 그래야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눈물짓는 환자와 가족의 마음을 우리 사회가 조금이나마 보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오상철 고려대구로병원 종양내과 교수·대한종양내과학회 홍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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