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은 연합군의 요구에 따라 평화헌법을 받아들인다. 이 헌법 제9조는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규정과 함께 ‘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평화헌법의 탄생과정을 보면 연합군을 이룬 세계 각국은 일본의 호전성과 침략의 역사를 일찍이 간파한 것으로 보이는데, 일본을 얼마나 위험한 존재로 보았기에 전쟁이나 무력을 포기한다는 규정을 아예 헌법조문에 못박게 했을까?
지금 일본의 아베 신조 수상은 어떻게든 평화헌법을 바꾸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일본인들은 이를 반대한다. 이를 보면 비록 과거역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나 피해국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없이 승전국의 강요에 따라 만들어진 헌법이기는 하지만, 전쟁의 참화를 겪은 일본국민의 굳은 지지를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아베의 정치형태를 보노라면 과거 일본의 침략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가 급사한 1582년 전까지는 권력과 거리가 먼 일개 무장에 불과했다. 그런데 주군이 어이없이 갑자기 죽자 주군의 복수를 명분으로 졸지에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변변한 가문이나 정치적 기반이 없다보니 권력의 유지가 녹녹치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군국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을 요량으로 실현불가능한 대륙정벌의 구호를 내걸고, 선량한 국민들을 살육과 약탈의 현장으로 내몰았다.
그런데다 히데요시의 망령은 20세기 들어 또 다시 일본을 사로잡았다. 우리나라를 침략하고도 모자라 1930년 중국과 우호를 도모하는 하마구치 오사치 수상을 암살하고, 이듬해 만보산사건을 조작해 만주를 침공한다. 1937년에는 노구교사건을 조작해 중국과 전면전을 벌이는가 하면, 1941년 급기야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일본의 국민들은 원자폭탄을 맞을 때까지 일본군의 거듭된 승전으로 대일본공영의 실현이 눈앞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지금의 일본 수상인 아베신조는 젊을 때 세이케이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어학연수를 다녀 온 뒤 고베철강에 입사했다. 그리고 3년 뒤 외무대신인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비서관이 됐다가 37세 때 아버지가 급사하는 바람에 지역구를 물려받아 졸지에 국회의원이 됐다. 그러다보니 그에게는 정치인으로서 내세울만한 뚜렷한 경력이나 치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 출세에 일본 우파의 지지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라고 한다. 그런데 쇼인은 근대 일본 우익의 원조로서 ‘민중이 단결해 무력을 갖춰 홋카이도와 유구(오키나와)를 병합, 조선을 공격해 인질과 공물을 얻은 후 만주와 대만, 루손(필리핀)을 정복해야 한다’고 주창한 인물이다. 이러한 역사를 되새겨 보면,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평화에 심각한 위험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에 전혀 주목을 않으니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다.
16세기 초 신숙주 선생은 해동제국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일본인)은 강하고, 사나우며, 무술과 배타기에 능한데,…도리를 따져 잘 달래면 예절을 차려 조빙(朝聘)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노략질을 일삼는다. …이적(夷狄)을 다스림은 외정(外征·외국정벌)이 아닌 내치(內治)에 있고, 변어(邊禦·변방을 지킴)가 아닌 조정(朝廷·정치를 논하고 행하는 곳)에 있으며, 전쟁이 아닌 사기진작에 있다”
이 가르침에 따르면 일본의 군국화는 다름 아닌 우리 손에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사를 보매 우리가 강할 때 일본은 예절을 차려 조빙하고, 군국주의는 존재가치를 잃었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국력이 우리를 추월한 계기는 토요토미 가문을 멸한 도쿠가와 막부가 문을 닫은 메이지 유신(1867년)이었다. 이 시기 일본은 쇄국과 통제를 풀고 국가체제를 변혁하지만, 조선은 쇄국과 통제를 고집하다 변혁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국력이 우리보다 앞선 시기는 반만년의 역사에서 불과 15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눈부신 속도로 쇄국과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 그리고 때마침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의 개연성으로 볼 때 우리가 일본을 역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렇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일본의 군국주의가 너무나 외골수인데다 뿌리 깊기 때문이다. 일본에 군국주의 바람이 불수록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민주주의의 정착과 정치의 불안정 해소를 위한 제도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래서 평화를 사랑하는 대다수 일본인에게 자랑스러운 이웃이 된다면,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은 설자리를 잃는다. ‘이적을 다스림은 외정이 아닌 내치에 있다’는 선현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자!/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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