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지한파의 이탈은 외교라인이 힘을 잃고 대북 강경론이 득세했음을 알리는 신호나 다름없다. 한동안 잠잠했던 군사 옵션의 그림자가 다시 어른거린다. 태평양 건너에서 날아오는 일련의 메시지는 이러한 기류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윤 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힌 당일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북미대화에 대해 “우리는 오직 ‘적절한 조건’ 아래서만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부는 ‘적절한 조건’이 ‘비핵화’를 의미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완전하게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의제로 삼지 않는 한 북미대화는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행보는 ‘핵동결→상응조치→핵폐기’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2단계 한반도 비핵화 해법과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조셉 윤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후보군이 대부분 대북 강경론자로 구성돼 있다는 것 역시 예사롭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좁아진 한미 간의 소통 통로가 더 협소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가뜩이나 북핵을 둘러싼 양국 공조에 엇박자 우려가 커지는 마당에 소통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자칫 당사국인 한국이 배제된 채 미국이 대북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다. 불행한 사태가 현실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한미공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길 외에는 답이 없다. 북미회담 성사를 위한 중재도, 남북 정상회담 추진도 이 틀을 벗어나서는 곤란하다. 미국 내 강경론이 커질 수 있는 여지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현 정부가 해결할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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