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방침과 관련해 거센 역풍에 직면하자 일부 국가에 대한 면제 가능성을 잇따라 거론하며 수위 조절에 나서는 모양새다. 미 의회가 대통령의 무역권한을 제어하는 초강수를 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다 미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무역규제에 반대해 사임하는 등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에 대한 미 안팎의 압박이 고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캐나다에 이어 유럽연합(EU)에 대해서도 관세 부과 면제를 시사했다.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EU 회원국인 스웨덴의 스테판 뢰벤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EU를 향해 “철강 관세 부과에 보복을 취하면 우리는 그들의 자동차에 25%의 큰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면서도 “EU가 우리 제품이 그곳에 가지 못하게 하는 끔찍한 장벽을 일부 들어내면 우리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며 관세 면제 적용 가능성을 열어뒀다.
당초 일괄 관세 부과를 주장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특정국 면제를 언급하는 것은 무역 상대국은 물론 미 의회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 관세 부과를 밀어붙이자 대통령이 관세 등 무역에 관한 정책을 결정할 때 의회 동의를 받도록 하는 법안 입법을 적극 추진하겠다며 강력한 경고에 나섰다. 미치 매코널은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당내 의원들 여럿과 이 법안을 얼마나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시행할지를 놓고 정부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공화당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관세가 부과되면 캐나다 등 동맹국도 피해를 입는다”며 외과수술식으로 표적을 좁혀 무역규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철강 관세에 강력 반대해온 콘 위원장이 사의를 밝힌 것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관세 부과에 대한 대통령의 최종 결정이 남은 상태에서 시장의 신뢰가 강한 콘 위원장의 퇴진은 증시 등 금융시장을 흔들면서 폭탄 관세를 강행하기에는 만만찮은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이어 EU에 대해서도 관세 면제 가능성을 열고 있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는 동맹국인 한국도 면제 대상에 포함될 것인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관세폭탄 제외 대상에서 배제되고 미국의 지속적인 통상압박에 시달릴 경우 향후 5년간 최소 7조원(68억달러)이 넘는 수출 손실이 발생하고 4만5,000여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암담한 전망이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7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대미 통상전략 긴급점검 세미나’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통상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통상은 물론 외교·안보 채널과 민간 기업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한국 기업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는 미국의 통상압박으로 철강 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글로벌 관세 25%를 적용할 경우 향후 5년간 최소 24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이로 인해 약 1만3,000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자동차부품 산업에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가 발동되고 세탁기·반도체·태양광전지 분야 등으로 통상압력이 확대될 경우 5년간 총 68억달러의 수출 손실이 생기고 4만5,000여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가장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이며 미국이 철강 분야에 대해 표적관세나 글로벌수입할당제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경우 피해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세미나 참석자들은 미국의 통상압박이 앞으로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통상 관계가 상당히 긴장돼 있고 쉽게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일방주의식 통상정책이 오는 11월 미 의회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한동안 이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손철특파원 고병기기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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