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환풍기를 랩으로 감싸두고 출근해요”
지난해 대구에서 올라와 청담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첫 서울살이를 시작한 이유진(25)씨는 외출 전 한바탕 ‘작업’을 벌인다. 화장실 환풍기를 타고 집안으로 스며들어오는 담배연기를 막기 위해서다. 이전에 여러 번 화장실 문을 열어두고 집을 나섰다가 저녁에 연기가 자욱한 방에 들어가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하다. 이 씨는“겨울철에 더 심했던 것 같아요. 옆집에 임산부는 이사 가더라고요”라고 하소연했다.
신림동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이소리(27)씨도 같은 상황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씨는 “집안에 담배 냄새가 가득한데 이번 겨울에는 미세먼지가 심해 환기도 못 시킨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 “경고 문구도 붙이고 안내 방송을 해봐도 하루이틀 뿐”이라고 토로했다.
◇층간 소음 앞지른 층간 흡연 민원…주택법 아닌 건축법 적용받는 오피스텔
층간 흡연을 둘러싼 이웃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국민권익위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신문고에 올라온 층간 흡연 민원은 353건으로 층간 소음 민원 239건을 넘어섰다.
지난달 10일부터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돼 아파트 실내 흡연도 금지됐다. 자신의 집에서 담배를 피우더라도 아파트 경비원이 집안을 점검하고 흡연을 제재할 수 있다.
하지만 오피스텔은 상황이 다르다. 업무시설로 분류된 오피스텔은 공동주택관리법이 아닌 건축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한 오피스텔 관리인은 “여긴 법이 다르다. 이웃 갈등을 더 키우지 않으려면 의심되는 집을 찾아가서도 ‘여기도 냄새 났나요?’라고 넌지시 주의를 유도할 뿐”이라고 말했다.
◇현실에 뒤떨어지는 건축법…주민 스스로 환풍기 설치하기도
지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중 오피스텔 거주 가구 수는 32만 가구에 이른다. 오피스텔은 아파트, 다세대주택에 이어 1인 가구의 대표적 생활 공간이지만 쾌적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의 마련이 현실을 뒤따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2012년 12월8일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본래 연면적 1,000㎡이상의 업무시설의 경우 복도, 계단 등 공용공간은 모두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다만 오피스텔과 같은 실내 사적 공간은 현행법상 흡연 단속을 할 수 없다. 아파트의 경우에는 주택법 개정을 통해 관리인을 개입시키기도 하고 주민 투표를 통해 금연 아파트로 지정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한 국토교통부는 2015년 9월 이후 사업 계획 승인 신청된 공동주택에 대해서는 세대 내 배기구에 자동 역류 방지 댐퍼를 설치하거나, 단위 세대별 전용 환풍구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오피스텔 실내 환경에 대한 법적 기준이 미비하다보니 오피스텔은 각자도생할 뿐이다. 일산의 한 오피스텔은 총 120개의 자동 역류 방지 댐퍼를 자체 관리비를 모아 화장실에 설치했다. 환풍기 생산 업체 힘펠은 “지난해 오피스텔의 전동 댐퍼 공동구매 건수는 전년 대비 2~2.5배 정도 상승 했다”고 밝혔다.
◇국토부 “주관 부서가 각각 달라”, 전문가 “현실에 맞는 법 개정 필요”
서울시와 국토부도 층간 흡연에 관한 규제 마련에 어려움을 토로한다. 서울시 건강증진과 관계자는 “층간 소음은 데시벨이라도 있는데 담배 냄새를 측정할 기준이 딱히 없다”며 “현재는 미세먼지 측정 기술을 참고할 뿐 규제 기준을 만들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실적인 필요성은 알지만 오피스텔과 공공주택은 주관 부서가 달라 규제가 별도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김기현 한양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경비원 개입, 환풍기 설비 등 명확한 연구용역 평가부터 필요하다”며 “연기 감지기 등 설비부터 시작해 규제 적용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인 가구의 대표적 생활 공간으로 자리잡은 오피스텔의 경우 새로운 법적 테두리 설정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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