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방송되는 KBS1 ‘다큐공감’에서는 ‘고개 숙이지 마라, 인생2막 박항서’ 편이 전파를 탄다.
1억명의 인구를 가진 베트남이 축구로 통일 이후 가장 뜨겁게 뭉쳤다. 23세 이하 축구대표팀이 동아시안컵 준우승을 한 것이다. 그들을 이끈 사람은 한국의 박항서 감독! 환갑의 나이에 인생2막의 도전을 한 남자다. 우리는 그를 히딩크의 코치로 기억하지만 베트남은 그를 영웅 박항서로 부른다.
▲ ‘박항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했어요’
베트남 통일 이후 이렇게 많은 인파가 하나 되어 거리로 쏟아진 적이 없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베트남 국기를 들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응원하는 것은 23세 이하 베트남 축구 선수들. 아시안컵 예선을 통과한 대표팀이 우승후보 이라크를 승부차기로 이기자 모두의 관심은 한 사람에게 쏠렸다. 대표팀 감독 박항서이다. 박항서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은 그가 기적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 ‘국내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지난해 10월, 그가 300:1의 경쟁률을 뚫고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 되었을 때 베트남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들에게 박항서는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를 보좌한 2인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트남에 오기전 박항서는 한국의 3부리그에 해당하는 창원시청 감독이었다. 국가 대표팀 감독에서 프로구단을 거쳐 3부로 내려온 그는 국내에서 더 이상 감독으로 갈 자리가 없다고 느꼈다. 젊은 감독들이 등용되는 흐름 속에 그의 인생1막이 끝나고 있었다.
▲ ‘국내 모든 감독을 통틀어 박항서 감독이 1등이었어요. 승률 68%!’
박항서 감독은 실적이 부진한 팀을 끌어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우린 그를 히딩크의 코치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가 감독을 맡은 팀은 늘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며 리그 1위를 차지하거나 상부리그로 승격되었다. 그는 선수들의 장점을 올리고 단점을 극복시키는 리더였다. 이런 그의 장점은 베트남 선수들의 잠재된 능력을 깨우는데 발휘되었다.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던 베트남의 젊은 선수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 ‘2002년 한국 대표팀에서 경질되었죠. 근데 성공만 한 감독이 실패를 알까요?’
2002년은 박항서 감독에게 영광의 해이자 고난의 해였다. 월드컵의 영광도 잠시 히딩크에 이어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그는 동메달을 땄지만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되었다.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 된 그는 두려웠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는 자유로웠다. 나이가 들고 욕심을 내려놓고 나니 어떤 힘이 생겼다. 인생 2막은 고개숙이지 않고 앞을 보는 자의 것이었다.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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